외환위기 직후였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이 땅에 돈을 대기만 하면 모두 국내기업이라고 했다. 외국인투자가 그만큼 절실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외환위기를 극복한 것처럼 보이자 외국인투자 유치 열기도 식기 시작했다. 당시의 상황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현재의 잣대로 외자유치 타당성을 따지는 일도 일어났다.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는 그 중 하나였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얘기가 있지만 외국인 눈에도 그렇게 비쳤을 게 틀림없다. 한 때 우리의 적극적인 외국인투자 유치노력을 호의적으로 봤던 해외 언론들은 이런 태도 변화에 싸늘하게 돌아섰다.

국제적인 금융위기 와중에서 유달리 한국에 적대적으로 대하는 외신들을 보면 이들이 그동안 많이도 벼르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정부는 외국인투자 유치를 위해 그동안 규제도 많이 완화했고,인센티브도 확대했다고 하지만 이런 일은 다른 나라들도 다 하는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외국인들은 혹시라도 반외자정서가 감춰져 있는 것은 아닌지를 더 살핀다는 얘기도 있다. 눈에 보이는 규제보다 반외자정서가 분출돼 외국인들 기억 속에 한번 박혀버리면 웬만해선 지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외국인투자 중엔 별 게 다 있다. 금융자본 중에서 이른바 '먹튀(먹고 튀는 것)'라고 하는 것이 그렇다. 그러나 처음부터 투자를 허용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원래 먹튀가 비즈니스 모델인 회사보고 왜 먹튀를 하느냐고 하면 그것처럼 웃기는 일도 없다.

그 때는 빨리 먹튀할 수 있게 해주고 다음 수순을 찾는게 상책이다. 괜히 한국은 처음과 끝이 다르다는 이미지를 외국인들에게 던져주기라도 하면 우리가 원하는 다른 외국인투자마저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제조업에서도 먹튀논쟁이 일고 있다. 바로 쌍용차의 경우다. 그러나 이 역시 우리 쪽에서야 하고 싶은 말들이 적지 않겠지만 상대방 생각이 우리와 똑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상하이차가 인수 · 합병 당시 약속했다는 투자에 대해 양쪽의 인식이 너무나 다른 것이 그렇고,기술교류냐 기술유출이냐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기술획득을 목적으로 한,국경을 넘나드는 인수 · 합병은 흔하다. 좌파 정치세력들과 민노총 등은 기다렸다는 듯 쌍용차 사태를 기업 간 문제가 아닌 국가 대(對) 국가 사안으로 비화시키면서 반중(反中)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인수 · 합병을 중국기업들만 하는 것도 아니고,또 그렇게 인수된 업체가 반드시 법정관리로 가는 것도 아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금융위기,끝이 안보이는 노사갈등이 지금의 쌍용차 사태와 무관하다고 볼 수도 없다.

국가 간 감정싸움이나 통상마찰로 번지는 건 피해야 한다. 그것은 중국이 겁나서가 아니라 문제만 더욱 꼬이게 할 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일로 외국인들이 한국을 금융이든,제조업이든 그 어떤 기업도 인수 · 합병해선 안되는 국가라고 생각해 버리면 당장 쌍용차에도 좋을 게 없다.

쌍용차가 살 수 있는 길은 있다. 고통스럽지만 과감히 구조조정을 함으로써 투자할 만한 회사로 만드는 것이다. 또 그렇게 해야 정부가 지원에 나서더라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