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서 냉대받는 서민 '일수'마저 못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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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해 10월 이후 다섯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파격적으로 인하했지만 돈이 필요한 기업과 개인들에게는 여전히 시중은행들의 문턱이 높기만 하다.
은행들이 지난 연말까지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을 내세워 대출문을 닫은데 이어 올 들어 강남권 등 특정지역 부동산 담보대출을 제외한 중소기업과 지방 부동산 담보대출, 개인 신용대출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 외면받고 있는 영세 소상공인들은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사금융권으로 눈을 돌리지만 이 마저 정부 단속에 길이 막히면서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시중은행 예금금리 내리고 대출금리 올린다?
한은이 지난달 1%p의 파격적인 기준금리를 인하한데 이어 지난 9일 금통위 정례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0.5%p 인하하는 파격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이에 따라 한은의 기준금리는 디난 9월말 현재 연 5.25%에서 연2.5%로 낮아졌다. 한은의 이번 기준금리 인하조치는 지난 10월 이후 다섯번째로 불과 4개월 사이 무려 2.75%p를 내렸다.
이는 한은이 그동안 펼쳐왔던 보수적 통화정책과 달리 시중에 돈줄을 풀기 위해 매우 이례적인 기준금리 인하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시중은행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경기 악화에 따른 기업매출 감소와 이에 따른 신용도 감소 등으로 중소기업과 개인에 대한 우대금리를 대폭 줄이면서 대출 금리는 오히려 오르고 있다.
ID '내피같은돈'이라고 자신을 밝힌 한 직장인은 최근 마이너스 통장 거래를 하던 A은행에서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이 직장인은 현재 연 7.8%의 마이너스 대출을 이용하고 있었는데 신년들어 연장금리를 연 8.7%로 올린다는 얘기를 들은 것.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이로 인해 CD(양도세예금) 금리가 떨어졌는데도 어떻게 금리가 올랐을까? 바로 고정금리와 신용등급 하락, 우대금리 감소때문이다. CD와 연동하는 변동금리를 이용하는 대출자는 그나마 한은 기준금리 인하 혜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대출금리가 'CD금리+가산금리+우대금리'로 구성된 탓에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적게 내리고 우대금리를 축소해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는게 현실이다.
특히 고정금리로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혜택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은행들이 더욱 깐깐하게 적용하는 신용 평가로 신용등급이 하락해 우대금리 축소 등으로 연장금리가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지역 사업자들의 경우는 더욱 암담하다. 인천에서 상가임대업을 하던 K씨는 지난해말 임대보증금 반환을 위해 주거래은행인 B은행에 1억원의 추가대출을 요청을 했다. 당시 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연말 BIS 비율 때문에 대출을 8000만원까지 밖에 못해준다"며 "새해에는 은행의 BIS 비율 부담도 줄어들고 한은이 추가 기준금리를 인하할 예정이기 때문에 원하는 금액을 보다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씨는 한달여 시간을 기다려 최근 은행을 찾았지만 청천벽력같은 얘기를 들었다. 상담을 해주었던 이 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부실 악화를 막기 위해 인천지역 상가건물에 대해 기존 50%까지 담보대출을 해주던 것을 1월부터 40%로 축소했다"며 "기존 대출이 있기 때문에 추가대출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달전까지만 해도 대출이 가능했던 8000만원도 불가능해졌다는 것.
◆기준금리는 내리는데 회사채BBB- 금리는 미동도 없어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효과는 대기업과 일부 우량기업, '알짜'지역 담보대출만이 '덕'을 볼 뿐 지방이나 중소기업 사업자, 일반인들에게 오히려 대출 받기가 어려워진게 현실이다.
신용등급이 낮아 시중은행 대출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던 직장인 L씨는 생활자금 마련을 위해 최근 제2금융권 대출을 알아보았지만 이 마저 불가능하게 됐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해도 대출 대상이었던 자신이 왜 대출을 못받느냐고 문의했지만 제2금융권이 부실 악화를 우려해 대출 대상 신용등급을 기존 대상등급에서 1~2등급을 올려 버렸다는 공허한 답만이 돌아왔다. 생활자금이 필요한 탓에 L씨는 눈물을 머금고 사금융시장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중소기업의 사정도 악화되기는 마찬가지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연 2.5%로 인하했지만 회사채BBB- 금리는 12일 기준으로 11.92%에 달한다. 한은이 10월이후 2.75%p의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동안 회사채 금리는 지난해 9월 30일 기준 10.81% 보다 오히려 1.11%p 올랐다. 경기침체 장기화로 기업경영 사정이 악화된 것이 주 요인이지만 그만큼 중소기업들이 필요한 자금을 얻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사금융 시장도 '냉랭'…영세 소상공인 생계 위협
제도 금융권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사금융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기업과 영세 소상공인들이 늘고 있지만 정작 사금융권은 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에 몸을 사리고 있다.
소위 '일수' 전단지가 사라지고 있는 것. 정부가 법정 최고이율 연 66%로 정하고 고금리 사금융에 대해 최근 단속을 강화하면서 '일수'를 놓던 사금융들이 대출을 꺼리고 있다.
대개 일수 업체들은 연 120% 이상의 살인적인 금리로 돈을 빌려주고 있다. 법정이율을 적용하는 사금융시장의 경우 신용조회와 담보를 근거로 대출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 사람은 다시 은행권을 이용하기 쉽지 않다. 시중은행들이 제2금융권 이하 금융기관을 이용할 경우 신용등급을 대폭 떨어트리기 때문이다.
이에 영세 소상공인은 신용조회를 하지 않는 초고금리의 '일수'를 이용하고 있는 것.
그러나 피눈물을 흘리며 연 120% 이상의 초고금리 일수를 쓰며 장사를 하던 영세 소상공인들은 이 마저 이용할 수 없게 되면서 그나마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장사를 접고 있는 실정이다.
한경닷컴 박세환 기자 greg@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
은행들이 지난 연말까지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을 내세워 대출문을 닫은데 이어 올 들어 강남권 등 특정지역 부동산 담보대출을 제외한 중소기업과 지방 부동산 담보대출, 개인 신용대출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 외면받고 있는 영세 소상공인들은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사금융권으로 눈을 돌리지만 이 마저 정부 단속에 길이 막히면서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시중은행 예금금리 내리고 대출금리 올린다?
한은이 지난달 1%p의 파격적인 기준금리를 인하한데 이어 지난 9일 금통위 정례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0.5%p 인하하는 파격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이에 따라 한은의 기준금리는 디난 9월말 현재 연 5.25%에서 연2.5%로 낮아졌다. 한은의 이번 기준금리 인하조치는 지난 10월 이후 다섯번째로 불과 4개월 사이 무려 2.75%p를 내렸다.
이는 한은이 그동안 펼쳐왔던 보수적 통화정책과 달리 시중에 돈줄을 풀기 위해 매우 이례적인 기준금리 인하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시중은행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경기 악화에 따른 기업매출 감소와 이에 따른 신용도 감소 등으로 중소기업과 개인에 대한 우대금리를 대폭 줄이면서 대출 금리는 오히려 오르고 있다.
ID '내피같은돈'이라고 자신을 밝힌 한 직장인은 최근 마이너스 통장 거래를 하던 A은행에서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이 직장인은 현재 연 7.8%의 마이너스 대출을 이용하고 있었는데 신년들어 연장금리를 연 8.7%로 올린다는 얘기를 들은 것.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이로 인해 CD(양도세예금) 금리가 떨어졌는데도 어떻게 금리가 올랐을까? 바로 고정금리와 신용등급 하락, 우대금리 감소때문이다. CD와 연동하는 변동금리를 이용하는 대출자는 그나마 한은 기준금리 인하 혜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대출금리가 'CD금리+가산금리+우대금리'로 구성된 탓에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적게 내리고 우대금리를 축소해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는게 현실이다.
특히 고정금리로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혜택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은행들이 더욱 깐깐하게 적용하는 신용 평가로 신용등급이 하락해 우대금리 축소 등으로 연장금리가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지역 사업자들의 경우는 더욱 암담하다. 인천에서 상가임대업을 하던 K씨는 지난해말 임대보증금 반환을 위해 주거래은행인 B은행에 1억원의 추가대출을 요청을 했다. 당시 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연말 BIS 비율 때문에 대출을 8000만원까지 밖에 못해준다"며 "새해에는 은행의 BIS 비율 부담도 줄어들고 한은이 추가 기준금리를 인하할 예정이기 때문에 원하는 금액을 보다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씨는 한달여 시간을 기다려 최근 은행을 찾았지만 청천벽력같은 얘기를 들었다. 상담을 해주었던 이 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부실 악화를 막기 위해 인천지역 상가건물에 대해 기존 50%까지 담보대출을 해주던 것을 1월부터 40%로 축소했다"며 "기존 대출이 있기 때문에 추가대출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달전까지만 해도 대출이 가능했던 8000만원도 불가능해졌다는 것.
◆기준금리는 내리는데 회사채BBB- 금리는 미동도 없어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효과는 대기업과 일부 우량기업, '알짜'지역 담보대출만이 '덕'을 볼 뿐 지방이나 중소기업 사업자, 일반인들에게 오히려 대출 받기가 어려워진게 현실이다.
신용등급이 낮아 시중은행 대출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던 직장인 L씨는 생활자금 마련을 위해 최근 제2금융권 대출을 알아보았지만 이 마저 불가능하게 됐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해도 대출 대상이었던 자신이 왜 대출을 못받느냐고 문의했지만 제2금융권이 부실 악화를 우려해 대출 대상 신용등급을 기존 대상등급에서 1~2등급을 올려 버렸다는 공허한 답만이 돌아왔다. 생활자금이 필요한 탓에 L씨는 눈물을 머금고 사금융시장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중소기업의 사정도 악화되기는 마찬가지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연 2.5%로 인하했지만 회사채BBB- 금리는 12일 기준으로 11.92%에 달한다. 한은이 10월이후 2.75%p의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동안 회사채 금리는 지난해 9월 30일 기준 10.81% 보다 오히려 1.11%p 올랐다. 경기침체 장기화로 기업경영 사정이 악화된 것이 주 요인이지만 그만큼 중소기업들이 필요한 자금을 얻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사금융 시장도 '냉랭'…영세 소상공인 생계 위협
제도 금융권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사금융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기업과 영세 소상공인들이 늘고 있지만 정작 사금융권은 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에 몸을 사리고 있다.
소위 '일수' 전단지가 사라지고 있는 것. 정부가 법정 최고이율 연 66%로 정하고 고금리 사금융에 대해 최근 단속을 강화하면서 '일수'를 놓던 사금융들이 대출을 꺼리고 있다.
대개 일수 업체들은 연 120% 이상의 살인적인 금리로 돈을 빌려주고 있다. 법정이율을 적용하는 사금융시장의 경우 신용조회와 담보를 근거로 대출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 사람은 다시 은행권을 이용하기 쉽지 않다. 시중은행들이 제2금융권 이하 금융기관을 이용할 경우 신용등급을 대폭 떨어트리기 때문이다.
이에 영세 소상공인은 신용조회를 하지 않는 초고금리의 '일수'를 이용하고 있는 것.
그러나 피눈물을 흘리며 연 120% 이상의 초고금리 일수를 쓰며 장사를 하던 영세 소상공인들은 이 마저 이용할 수 없게 되면서 그나마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장사를 접고 있는 실정이다.
한경닷컴 박세환 기자 gre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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