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근 노원구청장 <ng5238@hanmail.net>

가끔 "그 친구 일 잘해?"란 질문을 받곤 한다. 오랫동안 공직생활을 하면서 후배들을 평가해야 하는 일이 많다. 그런데 사람을 평가한다는 게 쉬운 것 같지만 사실 어렵다. 직장에 갓 들어온 신출내기부터 경험 많은 중견 간부까지.시대에 따라 이런 직장인에 대한 평가의 척도도 달라져 왔다. 과거엔 그저 윗사람이 시키는 일이나 잘하면 좋은 점수를 받았다. 또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 통했다. 그러나 요즘엔 열심히 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시대는 창의적인 사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졸업시즌이다. 경제가 어렵다보니 각 기업에서는 신규사원 채용 규모를 예년보다 줄였다. 이런 상황에도 힘든 취업의 관문을 통과하는 사람이 있다. 아마도 남보다 차별화된 사람일 게다. 바로 창의적 사고의 소유자다. 글로벌 경쟁 체제에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성실'과 '열심히'는 기본이고,뭔가 남보다 뛰어난 창의적 사고를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한다. 흔히 기업에서 가치혁신,블루오션 전략,차별화 전략을 말한다. 이것의 기본도 바로 창의적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1995년 서울시에서 근무할 때다. 점심시간에 덕수궁 대한문 앞을 지나다 외국 관람객들이 텅빈 문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이들에게 뭔가 보여줄 것이 없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순간 영국의 왕실 근위병의 교대 모습을 떠올렸다. 식사를 하며 동료들과 조선시대에도 왕궁의 경계를 서는 당직 병사들이 있었을 테고 교대의식을 했을 것이라는 등의 얘기를 나눴다. 사무실에 들어가 이에 대한 구체적 자료 검색을 했다. 마침 당시 조선왕조실록이 CD로 발매돼 수문장 교대의식에 따른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병사들의 복식,인원,군호,교대 방법 등.이를 토대로 왕궁건축,국조의례 분야 등 역사학자의 자문을 받아 위원회에 안건을 상정했다. 위원회에서는 "기발한 발상이다","고증이 불가능하다"는 등의 여러 이견이 있었으나 결국 전문가들의 고증을 거쳐 이듬해 덕수궁 왕궁수문장 교대의식이 빛을 보게 됐다. 현재 덕수궁과 경복궁을 찾는 시민들과 외국인들에게 문화 자산으로,관광 상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필자가 문화관련 업무를 하며 순간의 아이디어를 포착해 정책으로 옮긴 하나의 사례다.

돌이켜보면 공직생활을 하며 인사동 포도대장과 순라군,과거시험 재현,청계천 장통교 복원 및 교각잔재 보존 등 크고 작은 아이디어를 냈다. 필자는 늘 아이디어에 목말라 있다. 그래서 열심히 하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창의적 아이디어로 무장한 직장인을 일 잘하는 사람'으로 꼽는다. 세상을 바꾸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기업을,조직을 먹여 살리는 경쟁력이 바로 아이디어이기 때문이다. 뭔가 다른 시각에서 남다른 시도를 통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창의적인 사람.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