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선 <국회의원 yscho2008@hanmail.net>

"마치 젊은 미망인처럼 담담하고 외롭다. "국립박물관장을 지낸 고 혜곡 최순우 선생은 11월,어쩌다 가을비라도 내리는 오후,빈 숲을 등진 창덕궁 연경당의 모습을 이렇게 예찬했다. 비단 연경당뿐만이 아니다. 풀빛도 가신 초겨울에 보는 잘 지어진 한옥은 정말 무채색의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음전한 여인 같다.

이렇게 기품 있어야 할 한옥이 종종 쪽진 머리에 한복을 단아하게 차린 여인이 깡똥한 치마 밑으로 하이힐이 삐져 나오는 모습처럼 생경하기 십상이다. 한옥을 한 채 가지고 계신 선배가 있었다. 십여년 전,처음 그 집에 가보았을 때 그 집은 1900년대 신여성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조명과 벽지가 문제였다. 한옥과 전혀 어울리지도 않게 샹들리에를 흉내낸 전등과 기하학적인 무늬가 반복적으로 찍혀 번쩍거리는 비닐벽지를 볼 때마다 무척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해인가,그 집은 바뀌어 있었다. 벽에는 한지를 바르고,조명은 천장 속으로 숨어 버렸다. 아주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옥다움을 거스를 만한 것들은 일단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뿐만 아니었다. 마당도 변했다. 흡사 창덕궁 후원처럼,얌전한 돌담 앞에 키 작은 꽃나무,관목과 괴석을 차례로 놓아 정말로 한옥의 후원 같은 자태를 보이고 있었다. 무작정 유행 따라하기를 그친 여인이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찾은 듯했다.

얼마 전 어느 외국 대사관저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다. 50여년 된 그 집이 단층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한옥이라 했다. 너무 커서 대들보로 쓸 재목도 본국에서 들여왔다고 했다. 집안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그간 어설픈 한옥에서 눈에 거슬렸던 전등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큰 대들보 위로 간접 조명이 설치돼 실내가 훤했다. 벽지도 은은한 한지로 발라져 있었다. 마침 해가 뉘엇뉘엇 지는 늦은 오후였다. 서향으로 난 서재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석양의 햇살로 집안 전체가 따뜻한 오렌지빛으로 물들었다.

청와대에 있는 상춘재나 총리공관의 삼청당도 참 좋은 자리에 앉은 잘 생긴 한옥이다. 그런데 뜰 앞에서 느껴지는 한옥의 카리스마가 막상 실내에 들어서는 순간 사라지고 만다. 제대로 된 한옥에서 베푸는 얌전한 한정식 식사 한끼를 경험한 많은 외국인 손님들이 일생에 한번 겪었던 환상적인 식사였다면서 내내 지인들에게 자랑을 했다는 후일담을 심심치 않게 들었던 터다. 신흥국들은 절대 따라올 수 없는 역사의 깊이가 압도하는 공간에 초대해 얘기하는 것만큼 우리 홈코트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또 있을까. 힘은 언행뿐만 아니라 공간에서도 뿜어져 나온다는 사실을 많이들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