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종화의 대가 소치(小癡) 허련(許鍊 · 1808~1893년)의 탄생 200주년 기념전이 서울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허련은 추사 김정희의 제자로 남종화를 한국적인 화풍으로 발전시킨 인물.1856년 스승인 추사가 세상을 뜨자 고향 진도로 낙향해 운림산방을 짓고 화업에 전념했다. '소치 이백년 운림 이만리'를 주제로 한 이 전시회에서는 처음 공개되는 허련의 실경산수화 '일속산방도'를 비롯해 사군자,화훼,서예 등 70여점을 만날 수 있다.

소치의 아들 미산(米山) 허형(許瀅 · 1862~1938년)과 남도 화단의 거목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 1891~1977년),남농(南農) 허건(許楗 · 1908~1987년),임전(林田) 허문(許文 · 1941~현재),허진(許鎭 · 1962~현재) 등 운림산방을 중심으로 활동한 작가들의 작품 40여점도 함께 나와 있다. 소치에서 시작된 200년간의 허씨 가문 예술세계를 통해 남종화의 한국적 수용과 전개 양상,운림산방 화맥의 역사적 성격과 미래 전망까지 가늠할 수 있는 기회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허련의 1853년작 '일속산방도'(一粟山房圖 · 23×32㎝).철종 4년(1853) 허련이 46세 때 정약용의 제자인 황상(1788~1863년)에게 그려 준 이 작품은 관념적인 남종 문인화가 실경산수화로 발전하기도 했음을 보여준다. 당시 김정희는 이 그림을 보고 "지금 세상에 이런 작품은 없다"고 극찬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조선 중기 작품 '산수도'(山水圖 · 105.4×53.9㎝) 역시 원경,중경,근경을 모두 갖춘 수작이다. 가파른 절벽에 춤추듯 역동적으로 표현된 수지법,나지막한 둔덕과 하늘하늘 내려앉는 버드나무가 대조를 이루며 화면의 긴장과 이완을 만들어내고 격조를 더해준다. 진도 출신의 벽파선사에게 그려준 '모란도'(98.8×45㎝)에서는 아담하면서도 풍성한 모란의 모습과 능란하고 생기 넘치는 운필감이 느껴진다.

이 밖에 허형이 세필(細筆)묘법으로 그린 '산수도',허백련의 향토적 정취를 담아낸 '금강산10곡병풍',허건의 '유곡청애',허림의 '강춘조춘'등의 작품이 눈길을 붙잡는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동국 학예사는 "지금까지 다작이나 추사파의 일원으로 뭉뚱그려져 실제보다 평가절하돼온 소치 선생의 예술세계를 호남을 넘어 한국미술이라는 지평에서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른 5000원,학생 3000원.2월1일까지.(02)580-1284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