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장석주

아들아,어둠이 깊으면 새 날빛이 터지고,묵은 것은 가고 기어코 새 것은 온다. 묵은 것을 훌훌 털어내는 마음으로 새해 아침에는 배낭을 메고 함께 산을 오르자.가랑잎이 쌓인 산길을 골라 그 가랑잎을 밟으며 함께 산을 오르자.활엽의 나무들이 삭풍을 견디며 고단한 행군에 나선 병사들처럼 서 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숨결이 거칠어지는 것은 몸 쓰는 일에 게을렀던 탓이다. 숨결이 가빠지면 걸음을 멈추고 산 중턱이라도 잠시 쉬었다 오르자.

근처 마른 풀 위를 눈여겨보라.검은 콩알 같은 들짐승의 똥들이 흩어져 있다. 천지가 얼어붙은 이 겨울은 짐승에게도 시련일 게다. 들짐승들은 이 겨울을 어떻게 살아내는 것일까.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실학자 이익은 이렇게 썼다. "산과 들의 짐승들이 얼음이 얼고 눈이 쌓여도 견디는 것은 습관의 결과다. " 먹이를 구하는 일에 형통함이 막히면 산과 들의 짐승들도 움직임을 줄여 덜 먹고 덜 쓰며 견딜 줄 안다. 사람은 짐승보다 사정이 낫지 않느냐.형편이 여의치 않으니 웅크려 겨울을 나는 짐승들의 지혜가 놀랍지 않느냐?

한밤중의 도둑 같이 들이닥친 경제 한파는 쉬이 끝나지 않을 것이다. 기업들이 도산하고 나라 살림은 어려워진다고 한다. 경제 전문가라고 하는 이들은 올해 살림이 더 팍팍해질 것이라고 겁을 주지만 그 암울한 예언의 말들에 너무 기죽지는 마라.다니던 직장에서 나와 힘겹게 이 겨울을 나는 너에게 소동파가 쓴 이런 구절을 들려주고 싶다. "나는 오늘부터 하루 동안 먹고 마시는 양을 술 한 잔 고기 한 조각으로 그칠 것이다. 귀한 손님이 있어 상을 더 차려야 한다 해도 그보다 세 배 이상은 넘지 않을 것이다. "

소동파에게서 배울 것은 마음의 여유다. 벌이가 줄면 덜 먹고 덜 쓰면 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생명은 단 한 번의 기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찬란하게 쏟아지는 햇빛이 주는 기쁨,이마에 얹힌 땀을 씻어주는 한 줄기 바람에서 느끼는 순수한 쾌락을 온전하게 향유하라.

아들아,눈 뜬 자로 살며 마치 세상을 손아귀에 쥐고 그 모든 것을 다 아는 듯 오만하지 않았던가를 반성하자.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 나오는 늙은 백작은 인간성의 한계를 자각한 뒤에 "눈이 보일 적에 나는 오히려 헛디뎌 넘어지곤 했다"고 탄식하듯 말한다. 눈이 보이지 않는 자는 조심하는 까닭에 넘어지지 않지만,눈 뜬 자는 오만함과 경솔함 때문에 작은 돌부리에 넘어지는 법이다. 사람은 편안함 속에서 나태해지고,역경과 시련 속에서 단련된다.

폐족이란 굴레를 쓰고 혹여 풀이 죽어있을 두 아들에게 다산 정약용은 이렇게 일렀다. "빈고하고 곤궁한 괴로움이 또 그 심지를 단련시켜 지식과 생각을 툭 틔워주고,인정물태(人情物態)의 진실과 거짓된 형상을 두루 알게 해준다. " 다산은 두 아들에게 폐족이 되었으니 만사 거리낌이 없어 오히려 크게 유리하다고 일렀다. 곤궁하다고 기죽지 말고,오히려 심지를 단련시킬 기회로 삼으라고 말하는 게 아비의 마음이다.

아들아,높이 오를수록 마음은 낮은 곳에 두어라.낮은 곳에 처해 있을 때는 오히려 눈은 높은 곳을 향하게 하라.사람들이 절망을 말할 때 너는 그 절망을 뚫고 오는 희망의 빛을 응시해라.어둠 속에서 금빛 서광은 더욱 빛난다. 저 나무들 사이를 뚫고 달려오는 빛을 가슴에 품어라.잎 지고 빈 가지로 서 있는 저 나무들을 보아라.가지마다 잎눈이 달려 있다. 봄이 되면 저 잎눈들에서 연초록 잎들이 피어날 것이다. 조락과 죽음이 지배하는 이 겨울 숲에서도 무릇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신생의 삶을 준비하고 있다. 아들아,이 숲의 모든 나무들에 잎 돋고 꽃 피는 봄이 곧 온다고 상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