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법안에 '반기업 정서' 부각

여야 입법전쟁의 중심에는 '재벌'이라는 화두가 자리하고 있다. 민주당이 주요 쟁점 법안에 재벌이라는 딱지를 갖다붙이며 여론몰이를 하고 있어서다.

민주당은 이달 초 'MB악법'을 선정하며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 분리) 완화를 골자로 하는 은행법 등을 '재벌은행법'으로 공격했다. 당초 '언론장악법'으로 명명했던 방송법도 최근 '재벌방송법'으로 바꿨다.


◆재벌 이미지 정치적으로 이용

민주당이 '재벌'이라는 단어에 유독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재벌에 대한 일부의 반감을 이용해 관련 법안이 마치 특정집단에 특혜를 주기 위한 법안으로 포장하고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악용해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것"이라면서 "재벌을 타깃으로 삼아 사회를 이분화시키는 게 정치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금산분리 완화의 경우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소유는 현재도 가능한 상태이지만 민주당은 당장 재벌이 은행을 마음대로 휘두를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쟁점이 되고 있는 은행법 개정안은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소유 한도를 4%에서 8~10%로 높이는 내용이다.

방송법 개정안 역시 자산규모 10조원 이상의 대기업 집단에 대해서는 자본소유 한도를 다른 사업자의 절반 이하로 제한해 오히려 불이익을 줬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방송에 대기업이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국민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면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된다는 선입견을 갖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올바른 감독 방안과 사후 규제 방안을 생각해야지 근원부터 자르겠다는 태도는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치적 이용의 배경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사실과 관계없이 국민들의 정서에 호소하려는 '프레임(frameㆍ틀에 맞추기) 전략'의 일환으로 본다. 한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방송법의 경우 본질은 시청자의 선택을 넓히기 위한 탈규제적 성격이 강한데 다른 성격은 모두 제외하고 재벌의 방송참여만 부각시키고 있다"면서 "사실 자체보다는 국민들의 정서에 호소하는 전형적인 프레임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전략의 이면에는 지지율이 답보하고 당내 분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을 타개하려는 정치적인 포석도 깔려 있다. 여론조사기관인 e윈컴의 김능구 대표는 "민주당의 현재 모습은 사실상 살아남기 위한 생존 투쟁"이라며 "민주당 의원들을 살펴보면 성향상 보수 쪽이 많음에도 야당으로서의 정체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다보니 반재벌 기류로 서민층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노선 투쟁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말했다.

노경목/이준혁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