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생산관리 반장들 반발 … 위기극복 호소 결의대회 개최

"위기극복에 노와 사가 따로 있겠습니까. 10년전 외환위기때 해고 당한 뒤 가족들을 생각하며 눈물지을 때의 아픔을 잊었습니까. "

현대자동차 울산5공장의 생산관리 반장인 A씨(55)는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가 최근 회사측이 마련한 비상경영체제에 반발하고 나선 데 대해 "초가삼간을 다 태우고 난 뒤에야 후회할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다른 라인의 반장을 맡고 있는 B씨(56)는 "회사의 비상경영 선포를 갖고 노조가 조합원에 대한 도발행위라고 반발하는 것은 조합원 정서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이라며 "실직 공포에 떨고 있는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못듣는 집행부에 돌아갈 것은 거센 불신 뿐"이라고 꼬집었다.

◆노조 집행부에 대한 반장들의 '반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생산현장 조장과 반장들의 모임인 반우회 회원 800여명은 24일 아침 8개 사업부별로 위기극복 결의대회를 갖고 일반 조합원들의 동참을 호소하고 나섰다. 경영위기를 이겨내기 위해선 생산현장의 참여가 필수적인 만큼 위기의식 공유와 원가 절감,품질 향상 등에 솔선수범하겠다는 다짐이었다. 앞서 임금을 동결한 과장급 이상 관리직 사원들에 이어 고참 생산직 사원들도 위기극복에 본격 참여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조ㆍ반장은 근속년수 최소 15년 이상의 숙련 근로자들로 현장 생산작업을 실제 조율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들이 힘을 결집하고 나섬에 따라 회사측의 비상경영 체제에 반발하는 노조 집행부 움직임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울산공장 현장 조합원들 사이에선 '노조 집행부에 대한 반장들의 대반란'이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반장들은 이날 결의대회에서 현대차 위기극복에 전 조합원이 동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 반장은 기자와 만나 "지금 현대차는 죽느냐 사느냐의 벼랑끝에 서있다"며 "노사가 지금 한가롭게 갈등관계에 빠질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오죽하면 현대차 생산라인의 맏형격인 반장급 노조원들이 회사를 살리겠다며 노조 집행부에 '항명'하겠느냐는 반문도 덧붙였다.

소재생산관리부 반장모임의 송기현 회장(50ㆍ경력 23년)은 "지금은 외환위기 상황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어렵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며 "지금 근로자들 모두가 회사의 미래가 어떻게될지 엄청난 절망과 불안에 떨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외환위기 때 동료들이 해고돼 회사를 떠나는 아픔을 지켜보거나 경험했던 반장들이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며 "노조와 조합원들 스스로 위기극복을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공은 노조 집행부로 넘어갔다"

시트1부의 이재관 반장(50ㆍ경력 25년)은 "현대차 생산라인 곳곳에서 잔업과 특근이 사라져 조합원들 대부분이 올 연말 최소 70만~100만원 정도의 임금손실을 봐야 할 처지"라며 "문제는 이제 시작일 뿐으로 앞으로 생활고가 얼마나 어려워질지 알 수 없다"고 한숨지었다. 그는 반장들이 결의대회를 통해 아낄 수 있는 모든 것을 아끼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반장은 "조합원들이 장갑과 토시를 하루에 한개만 아껴도 하루 3만개,한달에 75만개를 아낄수 있고 이를 통해 최대 1억5000만원 이상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며 "이같은 작은 행동이 회사 경영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은 이제 노조 집행부로 넘어갔다는 게 현장 반장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반장들은 "노조가 회사의 비상경영체제를 놓고 현실을 과장하고 있다며 반발하기 보다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사가 위기 극복을 위한 카드를 내민만큼 이제 노조가 화답을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회사측에는 "외환위기 때의 구조조정을 겪은 아픔이 회사에 대한 불신으로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회사도 고용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는 이날도 "외환위기 이후 10년만의 최대 위기 상황에서 노사가 함께 협의해서 추진해야 할 비상경영체제를 회사가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잘못됐다"는 주장을 계속했다. 노조 공보부장은 기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미 GM이 파산 위기에 몰린 것은 강성 노조 때문이 아니라 노조가 제역할을 못하고 '회사의 2중대'로 전락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