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싸고 대주주지분 쪼개진 종목이 타깃 … 혜인태원물산 등 공개매수 선언에 연일 급등

연말을 앞두고 증시에서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동시다발적으로 나오고 있어 관심이다. 증시 침체로 주가가 급락함에 따라 내년 주주총회를 겨냥,경영권을 장악하기 위해 헐값이 된 주식을 공개매수 등을 통해 단기간에 대거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업력은 오래됐지만 기업가치가 잘 알려지지 않은 소외 종목이나 대주주측 지분이 여러 곳으로 잘게 쪼개져 경영불안 요인을 안고 있는 업체들이 M&A 표적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해당 업체들의 주가가 비정상적으로 치솟는 등 연말 증시에 큰 변수가 되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적대적 M&A'가 약세장의 관심 테마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지만 단기 급등에 따라 급락세로 돌변할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공개매수 M&A 잇따라

7일 금융감독원과 증권업계에 따르면 최근에는 대담하게 '공개매수'를 통해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공개매수는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시장에서 일정 기간 현 주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주식을 공개적으로 사들이기 때문에 해당 업체의 주가 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장외 건설업체인 라파도이엔씨는 유가증권시장의 건설 중장비 수입업체인 혜인에 대해 적대적 M&A 의사를 밝히고 오는 24일까지 주식 130만주(10.46%)를 주당 8000원에 공개매수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중순부터 혜인 지분 9.26%를 장내매수한 라파도이엔씨는 공개매수가 성공하면 보유 지분이 19.72%로 늘어 대주주(22.91%)를 위협하게 된다.

또 지난달 28일 태원물산에 대해 공개매수를 선언한 장외 건설업체 은산토건은 지난 5일 공개매수 가격을 기존 주당 2만5000원에서 3만5000원으로 높이고 매수 물량도 30%에서 35%로 확대했다.

적대적 M&A 수단으로 공개매수는 매우 드문 사례다. 2000년 이후 2004년 현대엘리베이터(공격자 KCC) 에스텍(동성화학) 세이브존I&C(이랜드월드)와 올해 샘표식품(우리투자증권 사모투자펀드 마르스1호) 등 4건에 불과했다.

M&A 컨설팅업체인 ACPC의 남강욱 부사장은 "공개매수를 결정한다는 것은 그만큼 M&A 대상 기업의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이번에 공개매수 대상이 된 혜인과 태원물산은 모두 오랜 업력을 가진 상장사로 기업가치가 시장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지분 경쟁 치열한 기업들

코스닥시장에서 적대적 M&A 표적이 된 휴람알앤씨씨모텍은 대주주와 공격자 간에 치열한 지분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장외 건설업체인 우원이알디가 지난 7월 우회상장한 휴람알앤씨는 경영 참여를 선언한 개인투자자 정만현씨의 무차별적인 지분 확대로 봉변을 겪고 있다. 직업이나 이력 등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정씨는 불과 보름 만에 이 회사 지분의 40.54%를 장내 매수해 새로운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그는 총 주식 매입 자금 141억원 전액을 지인에게 빌려 M&A를 시도하고 있다.

휴람알앤씨 주가는 정씨가 지분을 매입한 지난달 21일부터 상한가 8차례를 포함해 11일 연속 급등하며 430원에서 1600원까지 치솟았다.

대규모 키코 손실로 적대적 M&A에 노출된 씨모텍은 지난주 경영권을 노리는 김재우 동인스포츠 회장이 김영환 씨모텍 부사장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여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적대적 M&A의 대표적인 전략인 '경영진 내분'을 활용한 것이다.

혜인의 경우도 대주주 지분이 원희경 전 회장 일가(17.21%)와 손규식 회장(5.65%) 측으로 나뉘어져 있어 M&A 공격 세력과의 치열한 지분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원 전 회장의 아버지인 원용석 창업주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장관을 지내는 등 사업보단 정계에 치중해온 반면 손 회장이 40년 이상 회사 살림을 도맡아 왔다"며 "라파도이엔씨가 공개매수에 성공하면 손 회장의 거취에 관심이 모아질 것"으로 관측했다.

◆급등락 M&A주 신중하게 접근을

적대적 M&A 시도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남강욱 부사장은 "내년 정기 주주총회를 위한 연말 주주명부 폐쇄를 앞두고 적대적 M&A 시도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며 "기업가치보다 주가가 싸진 데다 적대적 M&A 시도가 시장에 먹히고 있어 적대적 M&A 테마가 급부상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적대적 M&A는 지분 경쟁 기대감으로 작용하면서 주가 급등으로 직결되고 있지만 급작스러운 추락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사례별로 투자자들의 꼼꼼한 대응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000년 이후 공개매수를 통한 M&A 시도가 모두 실패로 끝나며 급락세로 돌아섰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영곤 하나대투증권 투자정보팀장은 "주가가 공개매수가를 크게 넘어설 경우 공개매수가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대주주가 주식을 대거 매입 또는백기사를 동원해 경영권에 필요한 주식을 확보하거나 인수자 측이 갑자기 M&A를 포기해 주가가 수직 추락한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정의석 굿모닝신한증권 투자분석부장은 "공격자가 M&A 자금 전액을 단기대출로 조달하는 경우엔 조만간 자금 압박에 시달릴 수 있다"며 "과거 사례로 볼 때 적대적 M&A 이슈라고 해도 눈에 보이는 수급을 바탕으로 주가가 폭등하면 반드시 폭락이 뒤따른다"고 지적했다.

조진형/조재희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