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생신청 망설이는 기업을 위한 팁

법원에 회생 신청(옛 법정 관리)을 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올 10월까지 서울중앙지법에 회생 신청한 기업은 73곳.지난해(29곳)에 비해 2.5배가량 늘었다. 향후 경기 전망이 불투명해짐에 따라 일시적 자금난으로 기업 회생을 신청하는 기업들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한국경제신문은 대형 로펌의 도산 전문 변호사들에게 회생절차 신청을 고민하는 기업들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기업들이 시기를 놓치고 뒤늦게 회생 신청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도산 절차를 잘 모르는 경영자들은 기업회생 신청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어 시간을 끌 수 있을 때까지 끌다 뒤늦게 회생 신청을 한다는 것.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부장판사 및 고등법원 상사전담부 부장판사를 역임한 세종의 이영구 변호사는 "예전에는 경영권을 뺏기기 싫어 경영자들이 끝까지 버티다가 신청하는 기업들이 많았고 근래 들어서는 정부 대책을 기다리다 견디다 못해 회생 절차를 밟는 기업들이 많다"고 말했다.


회생을 신청하면 채권자들이 빚을 강제로 갚게 하는 강제 집행을 막을 수 있는 등 즉각적인 처방이 가능한데 기회를 놓쳐 부도 위험에 처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조세법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법무법인 율촌 소순무 변호사는 "회생 절차를 신청하면 일정 부분 경영권에 제약을 받기는 하지만 회생 절차는 기본적으로 기업을 살리는 제도"라며 "법원이 위기에 처한 기업들에 즉각적으로 도움이 되는 보전 처분 등의 조치를 취해 줄 수 있으므로 가급적 회생 절차를 이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또 적어도 얼마간의 운영 자금을 확보한 상태에서 회생 신청할 것을 주문했다. 회생 신청을 하고 나서 한 달여 뒤 법원이 개시 결정을 할 때까지 버틸 현금은 있어야 된다는 것.

대한통운을 대리해 인수ㆍ합병(M&A)을 성사시키고 에덴건설 등 많은 건설회사의 회생 사건을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태평양의 임치용 변호사는 "회생 신청을 하면 은행권의 신규 대출이 중단되고 거래처가 끊길 수도 있어 일시적인 어려움이 더 가중될 수 있다"며 "최소 3~4개월간 버틸 수 있는 자금이 있는 상태에서 신청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회생 신청을 하기 전 친ㆍ인척 등 특수 관계인들에 대한 빚부터 먼저 갚아서는 안 된다. 회생 신청에 임박해서 특수관계인들에게 이득을 주는 일을 했다면 나중에 부인권(회생 절차가 개시되기 전 행위의 효력을 취소할 수 있는 권리)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게다가 채권자들의 신뢰를 잃으면 회생 절차가 기각될 수도 있다.

대우그룹의 회사정리 절차를 진행한 법무법인 충정의 손도일 변호사는 "회생 신청에 임박해서 한 행위는 어차피 나중에 다 토해 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안 하느니만 못하다"며 "그렇게 되면 향후 운영 자금도 부족하게 되는 등 곤란한 지경에 빠질 수 있는 만큼 친ㆍ인척 챙기기는 후순위로 미뤄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 밖에 회생 신청 후 있을 수 있는 거래처나 채권자들의 반발을 사전에 예방할 것을 주문했다. 회생 신청이 받아들여진 뒤에는 법원의 명령을 절대적으로 따라야 한다. 또 기업의 재무구조를 꼼꼼히 파악해 어떤 부채가 많은지 분석하고 가능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것을 권했다.

손 변호사는 "회생 절차를 신청한 초기에는 일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핵심 인력들과 거래처,공급처가 끊길 수도 있다"며 "이들에게 성심성의껏 설명하고 회사가 괜찮아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