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단(貸主團)협약에 가입하면 대출이 1년 연장되고 자금이 지원됩니다.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꿔 가입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A은행 심사역)

"몇 번이나 얘기해야 합니까. 우리 회사는 자금에 문제가 없어 대주단에 들어갈 필요가 없고 만약 대주단에 들어가면 해외공사 수주에 차질이 빚어져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대형 건설업체 부장)

건설업체의 대주단협약 가입 문제를 놓고 24일 밤 늦게까지 은행과 건설사 간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가급적 많은 건설회사를 한꺼번에 가입시켜 건설사 지원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은행과 '대주단협약이 살생부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는 건설업체 사이에 실랑이가 밤 9시까지 이어졌다.

◆정부 압박에도 1차 신청은 저조

은행의 권유와 정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1차 신청 마감시한인 이날까지 가입을 신청한 곳은 24곳에 불과했다. 대한건설협회는 이날 오후까지만 하더라도 중견업체의 호응이 많아 100위권 내 건설사 중 50개 안팎이 신청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었다.

은행별로는 7~8개 업체가 신청한 경우도 있지만 단 한곳도 신청하지 않은 경우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 은행 관계자는 "오후 7시까지 중견 건설업체 3곳이 신청서를 제출했다"며 "업체들이 극심한 눈치작전을 벌이는 바람에 밤 9시까지 권유도 하고 기다려 봤지만 이후에 추가로 들어온 곳은 없다"고 전했다.

각 은행들은 신청한 업체에 대해 대주단협약 가입 승인심사를 거치겠지만 큰 문제가 없는 한 승인해 준다는 방침이다. 한 은행 임원은 "정부와 은행권이 공동으로 건설업체 지원을 위해 가동하는 것이 대주단협약인만큼 협약 가입이 거절되는 곳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10위권 내 건설사 신청 없어

10위권 내 대형 건설사 중 이날 가입을 신청한 곳은 한 군데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10위권 내 업체 중에서도 가입 의향을 밝히는 업체들이 늘고 있어 이 가운데 절반 가까이 신청하지 않겠느냐"는 한국주택협회 측의 예측도 완전히 빗나갔다.

대형 건설업체들은 겉으론 조용한 척했지만 내심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정부와 채권단이 대주단협약을 강요할 일이 아니라 각 건설사의 형편에 따라 자율적으로 가입하도록 유도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대형 건설사 임원은 "마감시한을 정하고 군사작전 하듯이 밀어붙이는 것은 문제가 많다"며 "신청한 것만으로도 대외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어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첫날엔 100위권 중 24곳이 신청했지만 정부가 대주단협약에 조기 가입하면 인센티브를 주기로 한 만큼 머지않은 시점에 상당수 건설사가 신청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는 이와 관련,대주단에 조기 가입하는 건설사에 대해 △환매조건부 방식이나 펀드를 통한 미분양 아파트 우선 매입 △중소 건설사의 경우 은행의 신규 자금 지원 시 신용보증기금의 보증 △회사채 우선 매입 등의 우대 혜택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은행연합회는 "대주단 협약을 적용 받더라도 자금사정이 악화되는 경우 워크아웃 적용 등 구조조정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건설업계는 은행과 건설회사들 사이의 시각 차이를 어떻게 좁히느냐가 향후 추가 가입 여부의 관건으로 보고 있다.

한 건설단체 관계자는 "대주단이 건설사를 A~D까지 4개 등급으로 구분해 지원 여부를 차등화하겠다고 하면서도 등급별 기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며 "특히 퇴출 대상으로 분류되는 D등급 역시 기준이 모호하다 보니 가입을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박준동/이심기/박영신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