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IB의 진로] (1) '한국형 모델' 만들자‥글로벌IB 퇴조…국내 M&A시장부터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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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서도 10위권 턱걸이…한국IB 아직 '걸음마 단계'
이번 기회 놓치면 또 '잃어버린 10년' 될 것
"글로벌 IB(투자은행)들이 몰락했다고 해서 자본시장의 역할이 달라진 것은 없다. 금융시장이 위기라지만 한국 자본시장이 취약한 만큼 IB를 키운다는 의지가 꺾여서는 안 된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선진 IB들이 휘청거리고 있는 지금이 바로 우리에겐 기회다. 우수 인력을 영입해 아시아 이머징마켓을 뚫어야 한다. "(박종수 우리투자증권 사장)
내년 2월4일로 예정된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국내 증권업계는 큰 시련기를 맞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 미국의 리먼브러더스와 메릴린치 같은 IB업체들이 쓰러져버려 벤치마킹의 대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씨티 같은 은행을 지주회사로 한 글로벌업체들마저 흔들리고 있어 IB 역할에 대한 회의론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그러나 선진 IB들의 몰락은 리스크 관리에 실패했기 때문이지 IB비즈니스 모델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는 아니라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앞으로도 기업들이 금융조달을 필요로 하는 한,금융중개자로서 어느 정도의 리스크를 부담하면서 수익을 창출하는 IB의 역할과 기능은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형태 증권연구원장은 "미국발 금융위기의 교훈은 IB는 위험하니 피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리스크 관리와 규제 아래 IB를 제대로 하라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자본시장이 취약한 한국은 IB를 키워야 기업도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더 커진다. 그런 만큼 글로벌 IB들이 모두 위기에 빠진 지금이야말로 한국 IB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를 놓치면 과거 외환위기 때와 같은 '잃어버린 10년'을 또다시 겪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안방 M&A시장도 내줘
문제는 글로벌 IB들의 실패한 비즈니스 모델을 버리고 '한국형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해법의 실마리는 먼 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본시장에서 구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올해 국내 인수·합병(M&A) 시장규모는 컨설팅까지 포함,총 67조3550억원으로 예상돼 작년보다 36.8% 커진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국내 증권사들이 컨설팅 등으로 참여한 것은 우리투자증권ㆍ미래에셋증권(각각 5건) 삼성증권(2건) 한국투자증권(1건) 등으로 점유율은 모두 합쳐도 4.1% 수준에 불과하다. 안방시장인데도 순위를 보면 우리투자증권만 간신히 10위권 내에 들었을 뿐이다. 호주 맥쿼리증권이 글로벌 IB들의 공백을 파고들어 19%의 점유율로 1위에 오른 것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국내 다른 IB부문도 다를 게 없다. 올 3분기까지 정부와 국내 주요 기업의 해외채권 발행 주간사는 HSBC 씨티그룹 메릴린치 도이치은행 등 외국계가 싹쓸이했다. 국내 업체로는 우리투자증권이 19위에 올랐을 뿐이다. 국내 기업의 기업공개 유상증자 등 주식인수 분야에서도 크레디트스위스 씨티그룹 UBS 등이 국내 증권사들을 한참 뒤로 따돌리고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아시아시장에서는 명함도 못 내미는 형편이다. 국내 증권사들은 아시아시장에서 현지 증권사와의 제휴를 통해 회사채 발행,기업공개,부실채권 인수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OB맥주 인수전에 뛰어든 국내 대기업 A사가 M&A 자문사 선정을 위한 제안요청서를 주요 IB들에 보냈지만 국내 업체는 한 곳도 없었던 이유도 이런 사정을 반영하고 있다. 내세울 실적이 없다보니 입찰 참여가 제한된 것이다.
한 증권사 IB관계자는 "M&A 주관사를 선정할 때 실력 못지않게 중요한 기준이 과거 실적"이라며 "그동안 실적이 없으니 신규 참여를 못하고 수주를 못하니 실적이 없는 악순환만 되풀이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국내 IB시장에도 기회 많아
전문가들은 한국형 IB는 우선 국내 시장에서 실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하고 있다. 과거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나름대로 노하우를 쌓았기 때문에 자본과 인력 등 인프라를 확충하면 이 부문에서 충분히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란 평가다.
특히 국내 M&A시장은 앞으로 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보여 가능성이 크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에다 실물경기 침체가 본격화되고 있어 국내 기업 구조조정시장이 10여년 만에 다시 열릴 것이란 전망이다. 여기에 국내 은행권이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IB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는 관측이다.
과거 1997년 외환위기 때 골드만삭스가 진로의 M&A 과정에서 거액을 챙긴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골드만삭스는 진로가 부도 위기에 몰리자 채권을 헐값에 사들였고 이후 2005년 하이트맥주가 이 회사를 인수할 때 해당 채권을 매각해 1조원이 넘는 대박을 터뜨렸다. 외국계가 사실상 국내 M&A시장을 독차지하고 있는 현 상황을 방치하면 앞으로 제2,제3의 진로 사례가 나타나더라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짙다. 한국 IB를 서둘러 키워야 하는 이유다.
임홍재 IBK투자증권 부사장은 "국내 M&A시장에서도 전통적인 강자였던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등 미국계 IB들이 뚜렷하게 퇴조기미를 보이고 있다"며 "국내 IB로서는 지금이 국내 시장에서 도약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김형태 원장은 "한국 IB는 호주의 맥쿼리가 자국에서 도로나 항만시설을 지으면서 쌓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와 프로젝트 파이낸싱의 노하우를 기반으로 세계시장 진출에 성공했던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태완/김재후 기자 twkim@hankyung.com
이번 기회 놓치면 또 '잃어버린 10년' 될 것
"글로벌 IB(투자은행)들이 몰락했다고 해서 자본시장의 역할이 달라진 것은 없다. 금융시장이 위기라지만 한국 자본시장이 취약한 만큼 IB를 키운다는 의지가 꺾여서는 안 된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선진 IB들이 휘청거리고 있는 지금이 바로 우리에겐 기회다. 우수 인력을 영입해 아시아 이머징마켓을 뚫어야 한다. "(박종수 우리투자증권 사장)
내년 2월4일로 예정된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국내 증권업계는 큰 시련기를 맞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 미국의 리먼브러더스와 메릴린치 같은 IB업체들이 쓰러져버려 벤치마킹의 대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씨티 같은 은행을 지주회사로 한 글로벌업체들마저 흔들리고 있어 IB 역할에 대한 회의론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그러나 선진 IB들의 몰락은 리스크 관리에 실패했기 때문이지 IB비즈니스 모델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는 아니라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앞으로도 기업들이 금융조달을 필요로 하는 한,금융중개자로서 어느 정도의 리스크를 부담하면서 수익을 창출하는 IB의 역할과 기능은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형태 증권연구원장은 "미국발 금융위기의 교훈은 IB는 위험하니 피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리스크 관리와 규제 아래 IB를 제대로 하라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자본시장이 취약한 한국은 IB를 키워야 기업도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더 커진다. 그런 만큼 글로벌 IB들이 모두 위기에 빠진 지금이야말로 한국 IB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를 놓치면 과거 외환위기 때와 같은 '잃어버린 10년'을 또다시 겪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안방 M&A시장도 내줘
문제는 글로벌 IB들의 실패한 비즈니스 모델을 버리고 '한국형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해법의 실마리는 먼 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본시장에서 구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올해 국내 인수·합병(M&A) 시장규모는 컨설팅까지 포함,총 67조3550억원으로 예상돼 작년보다 36.8% 커진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국내 증권사들이 컨설팅 등으로 참여한 것은 우리투자증권ㆍ미래에셋증권(각각 5건) 삼성증권(2건) 한국투자증권(1건) 등으로 점유율은 모두 합쳐도 4.1% 수준에 불과하다. 안방시장인데도 순위를 보면 우리투자증권만 간신히 10위권 내에 들었을 뿐이다. 호주 맥쿼리증권이 글로벌 IB들의 공백을 파고들어 19%의 점유율로 1위에 오른 것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국내 다른 IB부문도 다를 게 없다. 올 3분기까지 정부와 국내 주요 기업의 해외채권 발행 주간사는 HSBC 씨티그룹 메릴린치 도이치은행 등 외국계가 싹쓸이했다. 국내 업체로는 우리투자증권이 19위에 올랐을 뿐이다. 국내 기업의 기업공개 유상증자 등 주식인수 분야에서도 크레디트스위스 씨티그룹 UBS 등이 국내 증권사들을 한참 뒤로 따돌리고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아시아시장에서는 명함도 못 내미는 형편이다. 국내 증권사들은 아시아시장에서 현지 증권사와의 제휴를 통해 회사채 발행,기업공개,부실채권 인수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OB맥주 인수전에 뛰어든 국내 대기업 A사가 M&A 자문사 선정을 위한 제안요청서를 주요 IB들에 보냈지만 국내 업체는 한 곳도 없었던 이유도 이런 사정을 반영하고 있다. 내세울 실적이 없다보니 입찰 참여가 제한된 것이다.
한 증권사 IB관계자는 "M&A 주관사를 선정할 때 실력 못지않게 중요한 기준이 과거 실적"이라며 "그동안 실적이 없으니 신규 참여를 못하고 수주를 못하니 실적이 없는 악순환만 되풀이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국내 IB시장에도 기회 많아
전문가들은 한국형 IB는 우선 국내 시장에서 실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하고 있다. 과거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나름대로 노하우를 쌓았기 때문에 자본과 인력 등 인프라를 확충하면 이 부문에서 충분히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란 평가다.
특히 국내 M&A시장은 앞으로 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보여 가능성이 크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에다 실물경기 침체가 본격화되고 있어 국내 기업 구조조정시장이 10여년 만에 다시 열릴 것이란 전망이다. 여기에 국내 은행권이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IB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는 관측이다.
과거 1997년 외환위기 때 골드만삭스가 진로의 M&A 과정에서 거액을 챙긴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골드만삭스는 진로가 부도 위기에 몰리자 채권을 헐값에 사들였고 이후 2005년 하이트맥주가 이 회사를 인수할 때 해당 채권을 매각해 1조원이 넘는 대박을 터뜨렸다. 외국계가 사실상 국내 M&A시장을 독차지하고 있는 현 상황을 방치하면 앞으로 제2,제3의 진로 사례가 나타나더라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짙다. 한국 IB를 서둘러 키워야 하는 이유다.
임홍재 IBK투자증권 부사장은 "국내 M&A시장에서도 전통적인 강자였던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등 미국계 IB들이 뚜렷하게 퇴조기미를 보이고 있다"며 "국내 IB로서는 지금이 국내 시장에서 도약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김형태 원장은 "한국 IB는 호주의 맥쿼리가 자국에서 도로나 항만시설을 지으면서 쌓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와 프로젝트 파이낸싱의 노하우를 기반으로 세계시장 진출에 성공했던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태완/김재후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