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G20정상회의 결과를 설명하러 워싱턴 팔로마 호텔에 마련된 청와대 프레스 센터에 들렀을 때다. 이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점을 기자들에게 브리핑하며 스트로스 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발언을 소개했다. 이 대통령은 "칸 총재가 한국 같은 나라가 (IMF 자금을) 갖다 써야 IMF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다며,사용해 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은 그러나 "(지난번) IMF의 단기 유동성 지원 창구(SLF) 사용 건의에 대해 나라가 어려워진 것으로 오해를 받기 때문에 거절했다"면서도 이번의 칸 총재의 제안에 대해선 명확하게 답을 않고 넘어갔다.

듣고 있던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이 IMF가 신흥시장에 달러를 빌려주는 단기유동성 지원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고 한국도 그 대상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금융시장을 강타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즉각 반박자료를 내고 월스트리트의 보도를 부인했지만,IMF지원설은 시장에서 한동안 가시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브리핑을 마치고 프레스 센터를 나가자마자 예상대로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칸 총재의 제의에 대통령이 어떻게 반응했느냐는 것이 골자다.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는 SLF는 금융위기에 대한 지원책의 일환으로 만든 제도로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고 제공하는 자금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면서도 "그런 요청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이 문제를 고려하거나 검토를 한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그래도 기자들의 질문은 이어졌다. 칸 총재가 직접 이 대통령에게 요청하기까지 사전 정지 작업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에서다. 이번엔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나서 "IMF가 돈을 조건없이 갖다 쓰라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신용이 그만큼 좋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하면서 사태는 겨우 일단락됐다.

글로벌 금융위기란 급한 불은 껐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 'IMF외환위기'의 그늘이 여전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워싱턴=홍영식 정치부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