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있던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이 IMF가 신흥시장에 달러를 빌려주는 단기유동성 지원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고 한국도 그 대상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금융시장을 강타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즉각 반박자료를 내고 월스트리트의 보도를 부인했지만,IMF지원설은 시장에서 한동안 가시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브리핑을 마치고 프레스 센터를 나가자마자 예상대로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칸 총재의 제의에 대통령이 어떻게 반응했느냐는 것이 골자다.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는 SLF는 금융위기에 대한 지원책의 일환으로 만든 제도로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고 제공하는 자금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면서도 "그런 요청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이 문제를 고려하거나 검토를 한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그래도 기자들의 질문은 이어졌다. 칸 총재가 직접 이 대통령에게 요청하기까지 사전 정지 작업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에서다. 이번엔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나서 "IMF가 돈을 조건없이 갖다 쓰라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신용이 그만큼 좋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하면서 사태는 겨우 일단락됐다.
글로벌 금융위기란 급한 불은 껐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 'IMF외환위기'의 그늘이 여전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워싱턴=홍영식 정치부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