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기자 덕분에 낮 시간에 모처럼 운동을 합니다. " 고춘홍 사장은 사진 촬영에는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몇 번이나 저만치 뛰어가 렌즈 사정권을 벗어났다. 고 사장의 탄탄한 뒷모습은 전혀 환갑을 두 해 앞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다리를 가리키며 "최 기자와 같은 20대 청년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체력 하나는 자신 있다"고 말하는데 허풍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고 사장이 마라톤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1년 산악연맹이 주최한 산악 마라톤대회에 참가하면서부터.당시 그의 나이 40세였다. 이후 마라톤대회가 열리는 곳마다 쫓아 다니며 달렸다. 1999년에는 미국으로 날아가 보스턴 마라톤에서도 뛰었다. 지금까지 풀 코스 완주 횟수만 30여회.18년째 뛰면서도 "젊어서부터 운동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고 한다.
"젊어서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줄담배는 물론이고요. 1979년 오일 쇼크가 터졌습니다. 사업 시작한 지 3년 만이었죠.사업이 곤두박질 쳤습니다. 판로가 막혀 직원들 월급 줄 돈을 구하러 동분서주했어요. 그때 '이렇게 어려울 때 술ㆍ담배까지 하면 몸을 망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만 바라보는 가족과 직원들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달리기 시작했죠.술ㆍ담배도 끊었고요. "
이후 고 사장은 매일 아침 새벽 5시에 일어나 한 시간가량 조깅으로 하루를 연다. 규칙적으로 운동하다 보니 집안 내력인 고혈압 체질도 개선됐다. 이제는 "건강 체크는 헌혈로 하면 된다"고 자신할 정도다.
그에게 달리기는 건강 유지 수단이자 액션 플랜을 구상하는 자신만의 '전략회의 시간'이기도 하다. "조깅할 때는 하루를,마라톤을 뛸 때는 10년을 계획한다"는 것."경영과 마라톤은 같습니다. 꾸준히 하고 미리 준비해 두면 힘들지가 않아요. 하지만 준비를 안 하면 누구나 일을 그르치게 돼 있습니다. 또 욕심을 안 부려도 충분한 성과를 낼 수 있죠.풀 코스는 걸어도 일곱 시간 정도밖에 안 걸립니다. 그런데도 중간 낙오자가 생기는 이유는 자기 능력보다 빨리 가려고 무리하기 때문이죠.마라톤을 하면서 사업도 인생도 이런 이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
함께 뛰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재미도 쏠쏠하단다. 앞뒤 사람들과 격려의 말도 주고받고 직원들과 함께 뛸 때는 격의 없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그는 "70~80대로 보이는 어르신들에게 건강 유지 비결도 물어보곤 했는데 이젠 젊은이들로부터 질문을 받는 경우가 더 많다"며 웃었다.
"30㎞까지는 즐깁니다. 마지막 5~10㎞가 힘들죠.하지만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의 즐거움과 자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 맛을 보기 위해 이를 악물고 뛰죠.완주의 자신감은 사업의 추진력이 됩니다. "
고 사장의 '마라톤 바이러스'는 이미 회사 내에 퍼진 지 오래다. 2003년 사내 마라톤 동호회 '이브런'을 만들어 매주 토요일 새벽 120명의 회원들과 한 시간씩 뛴다. 동호회에서 다진 실력으로 마라톤대회 30위권 내에 드는 '청출어람' 직원들도 여럿 있다. 지난 3월에는 전 직원의 3분의 1인 100여명이 서울국제마라톤에 단체로 참가했다.
고 사장과 함께 온 직원은 기자에게 "전 직원이 마라톤 풀 코스를 한두 번쯤은 기본으로 뛰었고 하프 코스 완주로는 명함도 못 내민다"고 귀띔했다. 침구회사 대표답게 고 사장은 직원들에게 "이불을 둘러메고 전국을 누빌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체력을 강조한다. 때문에 이브자리는 신입사원을 뽑을 때 산행 면접을 하는 회사로 잘 알려져 있다.
'마라톤처럼 무리하지 말고 꾸준히 성실하게'라는 신념을 20년 가까이 철저히 지켜 온 덕에 1980년대 대기업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았고,IMF 위기를 이겨 내며 업계 1위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이브자리는 매년 15% 이상 성장,지난해 12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고 사장은 마라톤을 뛰듯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앞으로 고부가가치 사업에 주력할 계획이다. 2003년 세운 수면환경연구소에서 웰빙에 초점을 맞춘 상품을 개발 중이며 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이영희 한복 디자이너 등과 함께 개발한 신제품도 내년 초 내놓을 계획이다. 이를 무기로 내년부터는 미국 중국 베트남 등지로 본격 수출에 나선다.
"사업도 운동도 이제 막 출발선을 지난 기분입니다. 지난 겨울에는 스노 보드를 새로 배웠고 여름에는 웨이크 보드를 탔어요. 최근엔 두 달째 일주일에 세 번씩 수영장에 나가고 있습니다. 철인 3종경기 대회를 준비하고 있거든요. 2년 뒤 환갑 기념으로 출전해 완주할 겁니다. "
글=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사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