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구경한 지 며칠 된 것 같습니다. 이대로라면 차라리 문을 닫는 게 낫겠어요. "

전남 목포시 연산동에서 꼬치구이집을 하는 황순덕씨(43)는 긴 한숨만 내쉬었다. 불과 몇 개월 전엔 손님들로 발디딜 틈조차 없다가 이제는 썰렁하기만 한 가게 안이 야속한 모양이다. 목포지역 최대 조선소인 'C&중공업'과 지척에 있는 이 술집은 조선소 직원들이 퇴근길에 몰려 짭짤한 수입을 올리던 곳이었다.

조선업 비중이 80%를 차지하는 전남서남권 경제는 요즘 온통 불황의 그림자로 덮였다. 이 지역은 전남도가 몇 년 전부터 조선산업 클러스터로 육성하기 위해 산업체를 유치하는 등 공을 들이던 곳.현대삼호중공업을 비롯해 57개 조선소가 목포와 영암,해남,진도 등지에 산재해 있다. 특히 몇 년 새 목포의 C&중공업,진도의 고려조선,해남의 대한조선 등 이른바 지역 간판 조선소들이 속속 둥지를 틀면서 울산,거제권에 이어 국내 제3의 조선단지로 주목을 받아왔다.

그러나 간판 조선소들이 유동성 위기로 가동을 중단하는 등 파행을 거듭함에 따라 10여개 조선소가 입주한 목포 삽진산단 등지에선 '어느 조선소가 워크아웃 들어갔다더라' 등 흉흉한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금결제가 수개월간 미뤄지면서 300∼400개로 추정되는 협력업체들의 줄도산 우려도 현실화되고 있다. 줄잡아 10여개 중소업체가 이미 문을 닫았으며 얼마 전엔 자금 압박을 견디지 못한 목포의 한 협력업체 사장이 가족과 직원들에게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기도 했다.

협력업체의 관계자는 "미수금이 늘어나면서 감당키 어려운 빚 걱정으로 요즘 밤잠을 못 이루고 있다"며 "이 같은 상황이 올해 말까지 해결되지 않을 경우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절박함을 호소했다.

문제는 조선소의 유동성 위기가 쉽게 해결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조선업을 그룹의 핵심 역량으로 삼아 2000억원을 투자했으나 국제 금융위기 여파로 시설자금 대출길이 막히면서 모든 공정이 올스톱됐습니다. " 박영길 C&중공업 관리이사는 "그동안 수주한 물량이 벌크선 60척,33억달러에 달하나 자금 투입이 미뤄지면서 속수무책으로 모든 손해를 감수하고 있다"며 답답한 속내를 털어놨다. 회사 측은 올 12월까지 인도키로 했던 8만1000t급 첫 벌크선의 건조가 지연되면서 계약미이행금을 하루 2000만원씩 물어야 할 처지다. 자금 사정이 어려워지자 회사를 떠나는 직원도 줄을 잇고 있는 등 인력 유출도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부터 해남군 화원면에서 벌크선을 건조해온 대한조선도 사정은 비슷하다. 2600억원에 이르는 제2도크 건설비용을 조달하지 못해 벌크선 43척,35억달러 규모의 수주물량 중 상당량은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였다.

최근엔 산단개발을 담당하는 전남개발공사가 도크를 건설한 뒤 회사가 이를 분양받는 방안을 제의했다 특혜 시비에 휘말리는 등 진퇴양난에 놓였다. 회사 측은 345m 규모의 1개 도크를 460m로 확장해 도크 회전율을 높이는 등 긴급처방을 모색 중이나 수주물량을 소화하기엔 역부족이다. 고려조선 역시 유동성이 악화되면서 2005년 착공한 진도조선소 공사를 중단한 상태다.

박 이사는 "가동 중단 상태가 길어질수록 회생이 어려워지고 이는 국가신인도까지 추락시킬 것"이라며 "더 늦기 전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목포=최성국 기자 sk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