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만 해도 혐오식품으로 분류되던 김치. 이제 한류열풍을 타고 전 세계인에게 사랑 받고 있다. 일본과 중국 가정에서는 김치 담가먹기가 유행이라고 한다. 얼마 전 김치파동에도 불구하고 김치는 여전히 인기를 얻고 있다.

어느 김치 전문가가 말하길, 김치는 다섯 번 죽어야 진짜 김치가 된다고 한다. 배추가 뽑힐 때 죽고, 칼로 다듬을 때 죽고, 소금에 절일 때 죽고, 양념에 무칠 때 죽고, 마지막으로 김장독에 묻힐 때 죽는다고.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렇게 기본적으로 다섯 번 죽어도 금방 먹지 않고 푹 발효시킨 뒤에야 김치는 상에 올라간다. 겉절이같이 번거로운 과정을 생략한 김치도 있다. 양념과 재료는 비슷하지만 설익은 맛에 먹는 겉절이는 신선하지만 김치처럼 깊은 맛은 없다.

흔히 사람을 맛에 비유하곤 하는데 김치와 겉절이야말로 좋은 비교대상이다. 나는 유독 실패가 많았다. 실패가 많았던 내 삶을 반추해보면 인생이란 다섯 번 죽어야 좋은 맛을 내는 김치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공무원이 되려 했지만 꿈을 접어야 했고, 남들처럼 건강하게 살고 싶었지만 폐결핵으로 생사를 넘나드는 사투를 벌어야 했다. 인생의 쓴맛 단맛을 모두 맛본 덕분에 깊은 맛도 알게 된 것 같다. 인생의 맛이란 바로 눈물의 맛이 아닐까.

눈물은 인생의 동반자다. 울고 태어나 울일 많다가 울면서 죽어가는 것이 인생. 눈물이야말로 인생의 동반자다. 실패는 인생의 컨셉이다. 하나의 빛나는 승리는 수많은 패자의 눈물. 노인이 뼈만 남은 거대한 물고기를 바다에서 낚아 올리듯 실패하게 되어 있는 것이 인생의 컨셉이다.

인간은 적어도 세 가지 착각 속에 산다. 내가 오래 산다는 착각, 내가 옳다는 착각, 남들이 다 날 좋아한다는 착각.인생의 궁극적 목표는 영혼의 성숙이다. 실패야말로 영혼을 성숙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다. 더 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순간의 짜릿한 성공이 있다. 그래서 실패란 수시로 있을 수밖에 없다.

실패를 통해 수시로 자신을 되돌아볼 줄 안다면, 인생의 실패는 있어도 실패한 인생은 없다. 그렇게 해서 인간은 김치처럼 푹 숙성해간다.

첫눈엔 쌈박한 것 같지만 지날수록 아니다 싶은 사람이 있다. 겉보기엔 김치 같지만 맛은 겉절이 같은 사람. 패션, 화장술, 처세술이 발달한 요즘에는 이들을 구별하기가 참 힘들다. 김치는 겉절이를 알아볼 수 있지만 겉절이는 그럴 수 없다. 겉절이는 김치의 맛을 모르기 때문이다.

인생의 깊은 맛을 알게 되면 삶이 업그레이드된다. 이기적인 삶에서 벗어나 남을 생각하게 되고,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게 된다. 그러나 겉절이처럼 깊은 맛이 없는 삶을 살았다면 남을 배려하지 못하고 경거망동하기 십상이다.지금 여러분의 삶은 겉절이인가, 김치인가. 요즘에는 묵은지라는 김치가 인기다.

☞ 차길진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