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100여곳 적대적 M&A 노출"

금융위기 속에 사채업자들이 코스닥 대주주에게 자금을 빌려주면서 받은 담보주식을 대거 시장에 내놓고 있어 시장 불안요인을 가중시키고 있다. 담보주식 반대매매 물량이 쏟아지면서 해당 기업의 주가는 급락하고,대주주가 실종된 코스닥기업들도 속출하고 있다.

일부 사채업자들은 담보비율에 여유가 있어 담보처분권이 발생되지 않았음에도 담보주식을 대량으로 판 뒤 주가가 급락하면 되사오는 방식으로 차익을 챙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외국인들이 주식을 빌려서 파는 공매도를 한 뒤 저가에 되사들이는 '쇼트커버링'과 비슷한 방식으로 주가가 떨어질수록 사채업자들은 더 많은 차익을 얻는 반면 소액주주들은 급등락의 원인도 모른 채 애를 태우고 있는 실정이다.



9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가가 폭락했던 지난달 초부터 명동 사채업계를 중심으로 반대매매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해외 자원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지난해 상장사 2곳을 인수한 A씨는 지난달 반대매매를 당해 보유지분이 모두 없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타법인출자 공시 이후 급락세를 탔던 B사도 사채업자의 반대매매가 나오면서 대주주 지분이 사실상 증발된 상태다.

사채업계의 한 관계자는 "반대매매로 사실상 대주주가 사라진 회사가 코스닥기업을 중심으로 족히 100곳은 넘는다"며 "많게는 수백곳에 달한다는 추정도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주인 없는 기업이 급증한 탓에 정상적인 인수.합병(M&A)은 급격히 줄어들고 적대적 M&A를 노린 움직임이 활발하다"고 덧붙였다. 금융감독 당국도 지난달 반대매매가 쏟아진 것으로 판단하고 상장사들에 대주주 주식 담보거래와 관련한 '5% 지분 보고'를 철저히 하라는 공문을 돌리기도 했다.

사채업자들이 '공매도 쇼트커버링' 방식으로 매매한 것으로 추정되는 종목들도 속출하고 있다. 코스닥의 C사가 대표적인 의심 사례다. 이 회사는 지난달 2일부터 27일까지 하한가 11차례를 포함,17거래일 연속 급락하며 순식간에 89%나 폭락했다. 15일께 대주주 담보주식 300만주가량의 반대매매가 소화됐지만 하한가는 멈추지 않았고 28일부터는 사채업자들의 재매수가 의심되는 거래가 폭발하며 7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지난달 별다른 이유 없이 9일 연속 하한가를 기록하다가 이틀 연속 상한가로 급반전한 D사도 비슷한 사례로 꼽힌다.

담보주식들 가운데 한 종목이 폭락해 원금 손실이 우려되면 담보비율을 유지하고 있는 다른 종목들도 일단 처분하는 것이 사채업계의 관행이어서 이 같은 매매가 더욱 기승을 부렸다는 지적이다. 사채업계 관계자는 "지난달 금융위기로 주가가 폭락하는 기업들이 넘쳐나자 처분권이 발생하지도 않은 담보주식을 일단 팔고보는 사례가 급증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주주 담보물량이 시장에 나오면 주가는 폭락하게 마련이어서 저가에 주식을 되사는 사채업자는 주가가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앉아서 큰돈을 벌게 된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감자 결정 등의 내부 정보를 미리 알고 담보주식을 처분한 후 주가가 떨어지면 다시 사들이거나,주가 급락에 따른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차거래까지 동원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채업자들의 이 같은 매매는 해당 대주주들도 통상 사후에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아 대주주 지분변경이나 최대주주 변경사실이 제때 공시되지 않는 실정이다.

금융감독 당국 관계자는 "사채업자들의 담보지분 임의 매매는 시세조종이나 내부정보 이용,공시 위반 등의 위법 혐의가 짙다"며 "즉각적으로 이런 움직임을 포착하긴 힘들지만 앞으로 증권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가 드러나면 엄중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