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들, 수요감소 우려 덤핑판매 탓

글로벌 금융위기로 실물경제의 침체 우려가 높아지면서 국제 휘발유 가격이 원유 가격을 밑도는 비정상적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휘발유는 원유를 정제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정제 비용만큼 원유보다 비싼 게 일반적이다.

9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싱가포르 현물시장에서 거래되는 휘발유(옥탄가 92 기준) 값은 지난 5일 이후 사흘 연속 두바이유 가격을 밑돌고 있다. 5일에는 휘발유 가격이 배럴당 59.26달러로 원유값(59.36달러)보다 10센트 낮았고 6일엔 휘발유와 원유가격 차이가 55센트로 확대됐다. 7일에도 이런 '기현상'은 이어졌다. 휘발유 가격은 2005년 5월25일 이후 3년6개월 만에 가장 낮은 배럴당 52.76달러로 마감돼 두바이유(53.81달러)를 1달러 이상 밑돌았다. 두바이유도 이날 작년 1월31일(53.16달러) 이후 근 1년10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지만 휘발유 가격의 하락 속도가 상대적으로 더 빨라 가격차가 벌어졌다.

휘발유와 원유의 가격 역전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올 들어서는 지난 8월 초에 이어 두 번째 나타난 현상이지만 그 이전 기록은 7년 전인 2001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가야 찾을 수 있을 정도다.

최근 들어 휘발유 값이 원유가격을 밑돌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경기침체로 휘발유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걱정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유회사들은 국제시장에 거의 덤핑 가격으로 휘발유를 쏟아내면서 가격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가격 역전현상이 벌어졌던 2001년에도 아시아 국가들의 외환위기가 휘발유값을 끌어내린 주요인이었다. 정유회사 관계자는 "국제 휘발유 가격이 더 하락하기 전에 재고를 소진하려는 정유회사들이 최근 들어 석유제품 수출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며 "경기침체 우려로 석유제품 수요가 줄고 있어 당분간 휘발유와 원유 간 가격 역전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휘발유 국제가격은 이처럼 3년 반 전 가격으로 크게 떨어졌지만 국내 휘발유 값은 아직 1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원유를 수입해 정제하는 데 일정 기간의 시차가 있어 국제가격을 즉시 반영할 수 없다는 게 정유회사들의 설명이다. 주유소 종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8일 휘발유 전국 평균값은 ℓ당 1567.30원으로 1년 전인 작년 11월 초와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3년6개월 전인 2005년 5월25일(ℓ당 1388원)에 비해서는 여전히 12%가량 높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