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목소리 높여 주류사회 편입"

"의회에서 소수계 민족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한국계가 뉴질랜드의 주류사회에 편입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

지난 8일 치러진 뉴질랜드 총선에서 야당인 국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뽑힌 한국계 멜리사 리(한국명 이지연·43) 당선인은 "한국계 젊은이들을 단합시킬 리더십 프로그램과 네트워크 구축에 주력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계 이민자가 현지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는 김창준 전 미국 연방하원의원에 이어 리 당선인이 두 번째이며 여성으로는 처음이다. 뉴질랜드 인구 400만명 가운데 한국계는 3만5000여명에 불과하다. "몇 년 전부터 국민당으로부터 정치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이 왔지만 아들(10세)이 어려 망설여왔다"는 리 당선인은 "한인 커뮤니티에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총선 출마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번 총선에서 존 키 총재가 이끄는 국민당은 122석 가운데 59석을 획득,헬렌 클라크 총리가 이끌던 노동당(43석)을 제치고 9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국민당은 5석을 얻은 액트당,1석을 획득한 연합미래당 등과 연대해 새 정부를 구성할 계획이다.

리 당선인은 "지난 9년간 노동당 정부의 정책 때문에 뉴질랜드 경제상황이 좋지 않고 한국음식점도 손님이 없어 텅 비고 있다"며 "앞으로 경제를 발전시켜 해외로 돈벌이 나가는 뉴질랜드 젊은이들을 다시 불러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노동당 집권기간에 보건복지 분야 재정투입 규모는 2배로 커졌지만 의사나 간호사 숫자는 증가하지 않고 정부 관료 숫자만 늘었다는 게 리 당선인의 설명이다. 또 의사의 수입이 호주의 70% 수준밖에 안 돼 유능한 인재들이 해외로 떠나는 '두뇌유출 현상'이 심했다는 것.리 당선인은 "국민당이 100여개 개혁법안을 제출할 예정이어서 앞으로 바빠질 것"이라며 "국회 통상위원회에서 활동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리 당선인은 "한국은 뉴질랜드의 7번째 해외교역 상대로 매우 중요한 나라"라며 "한국과 뉴질랜드가 서로 앞서가는 분야를 교류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산영화제에 참가하려 한국에 왔다가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DMB(이동멀티미디어방송)를 보는 것을 보고 놀랐다"는 리 당선인은 "뉴질랜드에 정보기술(IT) 분야를 발달시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국에서 태어나 11살 때 부모를 따라 말레이시아에 건너가 어린 시절을 보낸 리 당선인은 호주 디킨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공부한 뒤 1988년 뉴질랜드에 정착했다. 1989년 '뉴스 미디어 오클랜드'라는 신문사에 입사해 기자로 활동하다 1994년부터 뉴질랜드 국영방송(TVNZ) 앵커로 활약했다. 1996년에는 '아시아 비전'이라는 방송제작사를 설립해 그동안 방송프로그램 제작업무를 병행해왔다. 종군위안부를 소재로 한 영화 시나리오도 직접 써서 현재 한국·뉴질랜드 영화 공동제작을 추진 중이다.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한국계 아이들이 부모와 사고방식이 달라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며 "그들을 돕기 위한 활동도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리 당선인은 특히 "한국이 앞서가고 잘돼야 저도 떳떳할 수 있다"며 "많이 격려해주기 바란다"고 말을 맺었다.

오클랜드(뉴질랜드)=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