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엔 칼로리 높아 기름 걷어내고 먹어야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따뜻한 것을 찾는다. 유달리 국물을 좋아하는 한국인에게는 그에 대한 간절함이 더하다. 수많은 탕류 중 가장 화려하고 정점에 서있는 것은 단연 곰탕이다. 서울 명동의 하동관은 60년이 넘었으면서도 변치 않는 맛으로 곰탕의 참맛을 전해준다. 북적거리는 실내와 달리 황금색 놋쇠그릇에 담겨 나오는 맑고 고요한 고깃국물은 명상적이다. 국물 위로 양지살과 양이,국물 밑으로 하얀 쌀밥이 침향처럼 담겨져 있다. 초록색 파를 얹고 붉은색 깍두기를 곁들이면 맑았던 국물은 금세 오색 찬란한 단청처럼 화려해진다.

곰탕은 오랫동안 한민족이 먹어온 음식임에 틀림없지만 20세기에 들어 처음 조어(造語)됐다. 그전에는 곰국,고음(膏飮),맑은 장국 등으로 불렸다. 같은 뿌리를 지닌 설렁탕과는 이웃사촌 간이다. 굳이 두 음식을 구별하자면 곰탕이 사태,쇠꼬리,양,곱창 등을 넣어 끓인 맑은 장국이라면 설렁탕은 쇠고기의 잡육,내장 등 거의 모든 부위를 소뼈가 붙어 있는 그대로 고아서 국물이 하얀색을 띠면서 진한 것이 특징이다.

어원상 여러 이설이 있는데 동아시아 음식사의 태두인 고 이성우 선생에 따르면 한반도에 새로운 고기문화를 전파한 몽고는 고깃국을 공탕(空湯)이란 의미의 '슐루'라고 불렀다. 여기서 공탕은 곰탕으로,슐루는 설렁탕으로 음운이 변화됐다는 것이다. 그는 또 설렁탕을 선농단(先農壇)에 결부시키는 것은 후세의 와전인 듯하다며 선농단에서 먹은 고깃국이 설렁탕이 되었다는 속설에 반대하고 있다.

호남을 대표하는 곰탕으로 나주곰탕을 빼놓을 수 없다. 나주는 영산강변의 작은 도시지만 수십 곳의 곰탕집에서 나오는 고깃국 냄새가 진동한다. 하얀집,노안집,남평식당이 3대 명소로 꼽힌다. 담백하면서도 달달한 국물과 진한 깍두기의 맛은 환상의 복식조처럼 잘 어울린다. 소 머릿고기와 우설(牛舌)·볼살 같은 수육은 곰탕집의 맛을 배가시키는 덤이다. 경상도에선 부산과 마산이 곰탕을 잘한다. 부산의 천안곰탕집은 5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나주와 서울에 비해 걸쭉한 국물 맛을 지켜오고 있다.

곰탕 명가의 특징은 맑은 국물에 있다. 곰탕을 끓이면서 기름기를 수시로 걷어내는 정성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따스한 고깃국물과 구수한 고기 한 점,포실한 쌈밥과 시원한 깍두기를 한 입에 넣으면 첫맛은 담백하고 고소하며,달달한 뒷맛은 은근하고 길게 남는다. 먹는 이의 입과 내장은 금세 맛의 향연으로 가득 찬다. 많은 사람이 쇠고기를 골고루 나눠먹기 위한 최상의 방법으로 곰탕이 만들어졌다는 연원을 따지면 인간적이기도 하다. 한국인이 그리워하는 모든 것이 곰탕 한 그릇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박정배 음식평론

예전부터 몸 보신에 첫손으로 꼽히던 곰탕이 이제는 오히려 칼로리가 높은 음식으로 여겨져 성인병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기피하게 되었다. 보통 곰탕 한 그릇은 400∼500㎉를 포함한다. 여기에 밥 한 공기를 더하면 700∼800㎉가 된다. 국내 성인의 하루 권장 열량은 대략 남자는 2500㎉,여자는 2000㎉ 정도다. 따라서 곰탕 한 그릇은 여자에게 한 끼 섭취 열량으로는 약간 많을 수도 있으나 남자에게는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니다. 곰탕 위에 떠있는 기름을 잘 걷어내고 먹으면 섭취하는 열량을 더 줄일 수도 있다. 성장기 청소년이나 육체노동자,수술 후 회복기에 있는 환자 등은 평균보다 많은 열량이 필요하므로 곰탕은 좋은 음식으로 권장될 수 있다.

곰탕에는 파를 송송 썰어넣는데 파는 노린내를 없애줄 뿐 아니라 파에 든 알리신이 체내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을 낮춰 주는 역할을 한다. 다만 소금으로 간을 할 때 약간 싱겁게 하자.

/조성제 내과 원장(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