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미 통화스와프 체결 막전막후] 姜장관, 폴슨ㆍ버냉키에 대뜸 "We need sw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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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동안 뭐하고 있었어?"
9월18일 오전 신제윤 기획재정부 차관보(국제업무관리관)에게 강만수 재정부 장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날 아침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유럽연합(EU) 및 스위스에 이어 일본 캐나다 영국 등과도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였다.
미국과 스와프 계약을 맺은 나라들은 모두 트리플A 등급인데 우리는 싱글A에 불과하다는 변명은 열이 오를 대로 오른 강 장관에겐 아예 '씨'도 먹히지 않았다. 강 장관은 "당신 얘기는 관료의 논리다. 내가 10년 야인 생활을 경험하면서 느낀 것은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신 차관보는 끝내 할 말을 잃었다.
◆비장의 무기 '리버스 스필오버'
막상 임무를 부여받았지만 미국 정부를 설득하려니 막막하기만 했다. 평소 친분이 두터운 클레이 로리 미 재무부 차관보에게 전화를 했다. "나 잘리게 생겼어"로 시작한 통화는 "통화스와프를 안 하면 우리가 외환보유액으로 갖고 있는 미국 국채를 팔 수밖에 없다. 그럼 미국도 곤란해질 것"이라는 반협박으로까지 이어졌다.
금융 위기에 처한 신흥시장국이 외환보유액을 사용하려면 미 채권을 매도할 수밖에 없고 그 경우 신흥국의 금융 불안이 미국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이 논리는 이후 강 장관의 작명에 의해 '리버스 스필오버(reverse spill-over)'라는 이름의 '공격 무기'가 됐다. 강 장관은 G20 재무장관 회의,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 등에서 반복적으로 리버스 스필오버를 외쳐 댔다.
그러던 중 9월24일 미국이 호주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 4개국 중앙은행과 추가로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하자 이성태 한은 총재는 즉각 실무진에게 가능성을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미국의 심장부에서 편 압박 전술
재정부 국정감사가 끝난 다음날인 10월8일.신 차관보는 워싱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IMF 총회 전까지 무조건 결론을 만들라"는 강 장관의 엄명에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재정부와 한은이 공조 시스템을 가동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한은 쪽에서는 이광주 국제담당 부총재보가 투입됐다.
이틀 뒤인 10일 강 장관이 워싱턴에 도착하면서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강 장관은 11일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를 만나 예의 리버스 스필오버를 역설했다.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는 느닷없이 폴슨 미 재무장관과 버냉키 FRB 의장에게 다가가 도발적인 대화를 하기도 했다. 신 차관보가 급히 달려가 보니 강 장관은 한국식 영어 발음으로 'We need swap…"라고 말하고 있었다. 14일 뉴욕으로 자리를 옮긴 강 장관 일행은 미 재무부와 FRB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로버트 루빈 전 미 재무부 장관 등 핵심 인사들과 연쇄 면담에 나섰다.
◆베이징으로 걸려온 전화 한 통
15일 뉴욕을 떠나 귀국하려는 강 장관에게 미국 내 모 인사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10일이나 15일 후에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습니다. "10월24일.베이징에서 열린 한ㆍ중 재무장관 회의에 참석 중이던 신 차관보에게 미국 정부 측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이번주 중 또는 주말 정도에 (미국과의 스와프 체결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 같은 시기 FRB도 한국은행에 협상 파트너를 보내줄 것을 통보했다. 이광주 한은 부총재보가 미국으로 급파됐다.
◆마지막까지 타들어 간 가슴
29일 오전 6시30분,그렇게 기다렸던 소식이 왔다. 미 재무부의 전화 통보였다. "30일 새벽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안건으로 한국과의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 건이 올라갔다. "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오전 2시30분 정도면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는데 3시가 돼도,4시가 돼도 연락이 없었다. 신 차관보의 가슴은 타들어 갔다. 오전 4시25분.전화가 걸려 왔다. 미국 뉴욕의 윤여권 재경관이었다. "통과됐습니다. 5분 후 발표합니다. 300억달러입니다. "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열린 국가경쟁력 강화회의에서 "강 장관이 미국에 가서 미 재무장관,FRB 의장 등과 얘기를 잘한 것 같다"며 공개적으로 노고를 치하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