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재무부채권 등 쥐고 원금보존 주력

"조만간 큰 투자기회 온다" 기대감 뚜렷


신용위기 여파로 미국 부자들도 일단 안전자산에 돈을 묻어놓으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현금성 자산이나 만기 3∼6개월인 미국 재무성 채권(빌)에 대한 투자 비중을 높이고 있다. 지난달 말 신용공황으로 단기 자금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을 때는 금 현물을 구입하겠다는 투자자들이 적지 않았다. 돈을 맡기는 은행이나 금 상품에 투자하는 펀드도 믿지 못하겠다는 풍조에 따른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주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을 사면 세금 혜택을 볼 수 있는데도 이마저 투자를 꺼릴 정도로 투자 심리가 악화됐었다. 경기가 좋을 때 유행하던 현대 미술 작품이나 비행기 혹은 요트에 대한 투자를 고려하는 사람을 최근 들어선 찾아 보기 어려워졌다. 오히려 최근 들어선 오히려 보유 중인 요트를 헐값에 처분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유력 자산 운용 담당자들은 슈퍼 리치 고객에게 주식과 부동산 투자를 검토해볼 것을 권하고 있지만 아직은 때가 이르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금 금 재무부채권을 쥐고 있지 않으면 손해를 볼 것이란 인식이 팽배하다.

일부 거액 자산가들은 이머징 마켓 펀드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는 등 위험 자산 비중을 낮추고 있다. 제니퍼 테이 시티프라이빗뱅크 아시아 대표는 "부자들이 수익률을 좇기보다는 원금 자체를 지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금을 지키면 조만간 큰 투자 기회가 올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부자들은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주식시장은 물론 이머징 마켓의 주가가 과도하게 빠졌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아직은 투자에 나설 때가 아니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주가 하락으로 보유 자산 가치가 줄어든 데다 경기 침체가 올 것으로 보고 일단 보수적인 투자행태를 보이고 있다. 자산 운용 담당자들은 이런 투자 심리를 감안해 대체 투자 대상을 찾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모든 자산 가격이 폭락하는 추세여서 대안을 찾기가 여의치 않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일부 공격적인 투자가들은 중국 비공개 시장에서 성장성이 탁월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을 골라 선투자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맨해튼 34가에서 투자자문업을 하는 제임스 강 사장은 "최근 거액 자산가 3명과 함께 중국 상하이를 다녀왔다"며 "인터넷 콘텐츠 관련 업체의 지분을 사는 쪽으로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중국에서 컴퓨터 활용이 급속히 증가함에 따라 관련 벤처기업의 미래 수익성이 좋을 것이란 판단에 따라 투자를 적극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이고 대부분의 부자들은 당분간 관망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