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아무 잔에 마시면 안돼?"

아직 와인과 친하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종종 듣는 이야기인데 답은 물론 "안 된다"이다. 흔히 와인은 '눈→코→입' 순서로 3단계로 마셔야 제맛이라고 한다. 우선 눈으로 와인 고유의 색과 빛을 감상한 후 스월링(swirlingㆍ잔을 돌려 와인 향을 잘 발산하게 하는 것)을 거쳐 코로 아로마(향기)를 즐기고 비로소 혀을 통해 맛을 음미한다는 것. 그런데 이 세 가지를 제대로 느끼려면 반드시 와인 잔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와인 잔은 어떤 구조이고 종류는 얼마나 될까. 보통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와인 잔은 맨 위 테두리 '림(rim)'과 '보울(bowl)',손잡이 부분인 '스템(stem)' 그리고 '베이스(base)'로 구성된다. 와인의 종류에 따라 레드 와인의 대표 산지인 보르도,부르고뉴 와인 잔과 화이트,로제,스파클링 와인 잔으로 나뉜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보르도 잔은 와인 특유의 향기가 잔 속에 남아 있도록 보울을 크고 길쭉하게 만들어 한 송이 튤립을 연상케 한다. 부르고뉴 잔은 보르도 와인보다 보울이 좀 더 볼록하고 림이 좁아 맛과 향이 섬세하고 복잡한 부르고뉴 와인의 향을 잘 느끼게 해준다.

이에 비해 화이트 와인 잔은 일반적으로 레드 와인 잔에 비해 크기가 작고 보울과 림의 크기가 비슷하다. 단맛을 느끼는 혀의 앞부분에 와인이 처음 떨어지게 해 산미(신맛)를 줄여줌과 동시에 차게 해서 마시는 화이트 와인의 특성상 온도가 빨리 올라가지 않게 하는 효과도 있다.

소위 '작업용' 와인으로 알려진 로제 와인은 잔 역시 선분홍색의 황홀한 와인을 잘 감상할 수 있도록 림을 피어나는 꽃처럼 만들었다. '작업 분위기' 조성에 한 몫 하게 해준다. 스파클링 와인 잔의 핵심은 '기포 감상'에 있다. 밑에서 올라오는 기포를 잘 보이게 하고 탄산이 빨리 날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길쭉한 모양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스페인의 '쉐리'나 포르투갈의 '포트 와인'처럼 알코올 도수가 높은 와인은 조금씩 마실 수 있도록 코냑 잔과 비슷한 형태를 띤다.

비너스와 더불어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가슴을 가졌다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유방을 본 따 만들었다는 와인 잔! 이처럼 예술적인 감각에다 와인 특유의 향기를 모으고 혀에 떨어지는 각도까지 고려해 만들어진 것이 와인 잔이다. 게다가 와인이라 하면 분위기를 빼놓을 수 없는 것이기에 아무 잔에나 마셔서는 곤란한 일이지 않겠는가.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