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 영화투자배급사 엠플러스픽쳐스가 지난달 4일 개봉한 다큐멘터리영화 '지구'의 관객이 22만명을 넘어섰다. CJ엔터테인먼트나 쇼박스 등 대형 배급사들이 배급을 대행했다면 차기작을 올리기 위해 1∼2주 만에 간판을 내렸을 영화다. 그러나 엠플러스픽쳐스는 다큐멘터리로는 역대 최대인 167개관에서 개봉했으며 두달간 계속 상영할 계획이다. 관객들로서는 '작지만 알찬'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넓어진 셈이다.

지난 주말 서울 강변CGV에 두 자녀와 함께 온 주부 이영미씨는 "개봉한 지 오래된 것으로 아는데 지금도 볼 수 있어 표를 샀다"며 "아이들에게 유익한 영화를 자주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자체 투자한 한국 영화 '마이 뉴 파트너'를 시작으로 배급사업에 뛰어든 엠플러스픽쳐스는 연간 한국 영화 2∼3편,외화 4∼5편을 배급할 계획을 세워놨다.

이처럼 불황 속의 실속경영을 겨냥한 중소형 배급사들이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올 들어 엠플러스픽쳐스 외에 NEW,성원아이컴,벤티지홀딩스,싸이더스FNH 등이 영화 배급에 뛰어들었다. 이달에도 시너지가 23일부터 홍콩영화 '화피',메가픽쳐스제이씨가 31일부터 한국영화 투자작 '맨데이트'로 배급 사업을 시작한다.

이들은 자체 수입한 외화나 한국 영화 투자작을 연간 10여편씩 배급할 계획이다. 이로써 지난해까지 10여개였던 영화 배급사가 올해에는 20개에 육박할 전망이다. 배급업계의 지형도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중소형 배급사들이 이처럼 급증하는 것은 부가판권 시장이 붕괴됐기 때문이다. 2006년까지 영화 편당 매출의 25%를 차지하던 부가판권 수입이 지난해에는 18% 수준으로 떨어졌다.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고 DVD나 방송 판권 수입에 의존했던 상당수 저예산 수입 외화도 극장 흥행 수입을 노려야만 하게 됐다. 그러나 기존 대형 배급사들로만으로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영화사들도 대형 배급사들에 위탁한 영화들이 지출액에 비해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대형 배급사들이 자체 투자작 중심으로 일정을 잡고 흥행이 조금만 부진해도 간판을 내렸기 때문에 위탁 업체들은 개봉 시기와 스크린 수,상영 기간 등에 불만이 컸다.

배급 업무를 위탁하면 편당 외화 300만원,한국 영화 500만원의 진행비와 함께 흥행 수입의 8∼10%를 줘야 하는데 이 정도면 1∼2명의 자체 배급인력을 고용해 사업을 하는게 낫다고 본 것이다.

또 시네마서비스와 프라임엔터테인먼트 등 기존의 대형 배급사들이 사실상 배급사업을 중단하면서 힘의 공백이 생겼고 극장 수도 크게 늘어나 배급 협상력까지 생겼다.

'선제 공격'에 나선 중소형 배급사의 성공 사례도 자극이 됐다. 2004년부터 매년 저예산 영화 50∼70편을 10개관 안팎에서 선보여온 스폰지는 올 들어 대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11만명)로 수익을 냈고,한국 영화 '영화는 영화다'에서는 투자와 제작까지 겸해 큰 수익을 거뒀다. 미디어2.0도 지난 4월 싼 값에 수입한 '테이큰'을 배급해 200만명 이상을 동원하며 50억원 이상을 벌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