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푸드 시대는 갔다. '

2003년 3월.세계 최대 패스트푸드업체인 맥도날드의 주가는 대폭락했다. 창립 이후 처음으로 2002년 4분기에 3억4380만달러의 적자를 냈다는 발표 때문이었다. 주가는 이내 반토막났다. 언론은 앞다투어 패스트푸드 산업의 몰락을 예고해댔다.

그럴 만도 했다. 맥도날드의 상징인 '빅맥'은 '공공의 적'이 되는 분위기였다. 크기만 한 햄버거,트랜스지방이 많은 감자튀김은 건강을 저해하는 상징으로 여겨졌다. 스타벅스와 던킨도너츠의 약진도 맥도날드의 기반을 흔들었다. 당시 최고경영자(CEO)인 찰리 벨조차 "창사 이후 최대 위기"라고 규정했을 정도다.

뭔가가 필요했다. 당장은 경비절감 필요성이 등장했다. 인원감축을 포함한 구조조정도 불가피해 보였다. 건강에 나쁘다는 인식을 주는 식단을 개선하는 것도 시급했다.

맥도날드도 기민하게 움직였다. 다음 달인 4월 대안을 내놓았다. 이름은 '승리계획(Plan to win)'.직설적인 제목이었지만 직원들과 투자자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명확했다. 핵심은 '직원'이었다. 직원을 자르기는커녕 오히려 직원에 대한 교육투자를 늘리기로 했다. 대부분의 전망을 뒤엎는 역발상의 베팅이었다.

승리계획은 맥도날드의 사내대학인 '햄버거 대학'에 대한 투자확대로 현실화됐다. 직원들의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이끌어내야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절실함이 햄버거 대학에 대한 투자를 더욱 늘리게 했다. 햄버거 대학은 이 같은 요구에 부응해 승리계획의 구체적 지침인 '5P 계획'을 만들어 냈다. 사람(people) 제품(products) 장소(place) 가격(price) 홍보(promotion)로 나눠 각각의 업무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각 매장에서 곧바로 실천에 옮겨졌다.

맥도날드가 그렇다고 마냥 투자를 늘린 것만은 아니었다. 교육투자를 늘리는 대신 다른 부문에서는 강도 높은 혁신을 진행했다. 점포 확장을 중단하고 글로벌 지역본부의 절반 가까이를 폐쇄했다. '맥도날드 CEO 업무의 80%는 부동산 업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사세 확장을 중시하던 맥도날드로서는 큰 결단이었다.

결과는 극적이었다. 1년여가 지나자 매출액이 다시 늘었다. 새롭게 선보인 샐러드 등 건강식단과 서비스의 개선은 떨어져 나간 고객을 다시 불러 모았다. 주가는 다시 고공행진을 했고 '패스트푸드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는 찬사도 나왔다.

랠프 알바레즈 맥도날드 회장은 "기자들이나 애널리스트들로부터 건강을 중시하는 새로운 메뉴 덕분에 맥도날드가 회생할 수 있었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며 "이럴 때마다 그렇지 않다고 분명하게 답한다"고 말했다. 대신 "위기가 닥쳤을 때 적극적으로 인재에 투자한 것이 회생의 비결이라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위기가 닥칠 경우 대부분 기업들이 가장 손쉽게 선택하는 방안은 축소경영이다. 당장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 감원유혹에도 빠져 든다. 물론 어떤 일이 있어도 핵심인재는 보호한다고 외친다. 그렇지만 한 순간에 잘려나가는 동료들을 보며 핵심 인재조차 회사의 신뢰성에 고개를 저으며 등을 돌리곤 한다. 그렇지만 맥도날드처럼 힘들 때일수록 인재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하는 기업은 결국 회생한다는 게 경험이 주는 교훈이다.

휴렛 팩커드(HP)도 마찬가지다. 1939년 설립된 HP는 '어려울 때에 대비해 소수를 뽑되 일단 직원이 되면 파산 때까지 함께 간다'는 독특한 인재관리제도로 유명하다. 1980년대도 그랬다. 극심한 불황으로 대기업들이 앞다퉈 정리해고에 나섰다. HP는 감원 대신 급여 10%삭감을 선택했다.

이렇던 HP도 2002년 닷컴버블 붕괴로 최대 위기를 맞았다. 눈물을 흘리며 직원들 해고에 나섰다. 이런 와중에서도 HP는 핵심인재에 대한 투자는 오히려 늘렸다.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리더를 육성하기 위해 '다이내믹 리더십'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조직을 이끄는 핵심 인재들을 집중적으로 교육했고,이들은 위기에서 벗어나는 선봉장이 됐다.


미국의 대표적인 저가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항공.경제위기와 고유가의 여파 속에서도 지난 2분기까지 69분기 연속 흑자를 내 주목을 끌고 있는 회사다. 대부분 항공사가 개인 수화물에 수수료를 부과하고 일부노선을 폐쇄하고 있지만 '고객과의 약속은 끝까지 지킨다'며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회사이기도 하다.

이처럼 사우스웨스트항공이 잘 나가는 데는 2001년의 위기가 보약이 됐다. 9·11테러 이후 항공기 이용객이 급감하면서 모든 항공사들이 존망의 기로에 내몰렸다. 앞다퉈 직원들을 해고하던 시절,사우스웨스트는 직원들의 교육투자를 과감히 늘렸다. 아울러 각종 인센티브제도를 도입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거나 창의성을 실천에 옮기는 직원을 우대했다.

맥도날드와 HP는 지난 17일 JP모건체이스가 선정한 '앞으로 2년간 세계 경기 불황이 지속되더라도 잘 견딜 수 있는 16개의 기업'에 포함됐다. 사우스웨스트항공도 불황을 이길 수 있는 대표적 항공사로 꼽힌다. 위기일수록 인재에 투자하는 기업이 훨씬 강해진다는 얘기는 단순한 가설이 아니다.

오크브룩(미 일리노이주)=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