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의 고급 상업지역 긴자 한복판에 있는 미쓰코시 백화점.지난 18일 오후 6층의 신사복 매장은 주말인데도 한산했다. 버버리 매장의 다카하시 기이치 점포장(49)은 "9월 이후 매출이 급감했다"며 "이달에는 작년 같은 달보다 30% 정도 판매가 줄어들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신사복이 경기에 민감하긴 하지만 요즘처럼 찾는 손님이 없기는 1990년대 초 거품경제 붕괴 이후 처음"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 백화점 5층에 있는 보석 매장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귀금속 매장의 직원은 "작년 말까지만 해도 부동산이나 정보기술(IT)업계 벤처 사장들이 5000만엔(약 6억5000만원)대의 보석 커플 시계를 종종 사가곤 했다"며 "그러나 올 들어선 5000만엔 이상짜리 시계는 한 개도 팔지 못했다"고 전했다.

일본도 글로벌 경제위기의 충격파가 작지 않다. 특히 최근 도쿄 증시가 폭락하면서 '역(逆) 자산효과'가 발생해 부유층들이 지갑을 닫기 시작했다. 지난달 백화점 매출은 5240억엔으로 전년 동월 대비 4.7% 감소했다. 7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신사복 부인복은 물론이고 보석이나 귀금속 등 고가품의 매출 감소(―6.4%)가 두드러졌다. 일본백화점협회 히라이데 쇼지 고문은 "올 전국 백화점 매출은 7조5000억엔을 밑돌아 1987년 이후 21년 만에 최저 수준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밑바닥 경기는 더욱 심하다. 2002년 이후 이어진 최장기 경기회복세가 올 들어 꺾이기 시작한 데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까지 겹치면서 장사가 안돼 문을 닫는 음식점 숙박업 등 자영업소들이 급증하는 추세다. 지난해 말 503만명이었던 자영업자는 올 8월 말 현재 488만명으로 줄었다. 자영업자가 500만명 밑으로 줄어들기는 1954년 이후 처음이다.

주택시장에도 불경기의 그림자가 짙다. 도쿄의 고급 주택가 중 한 곳인 메지로에 올 4월 초 신축된 고급 맨션 아파트 '시티 팰리스'.대기업인 미쓰비시 부동산이 지어 분양한 아파트지만 분양 6개월이 지나도록 절반이 비어 있다. 분양가가 1㎡당 70만엔(약 900만원)으로 주변 아파트의 1.5배에 달해 분양률은 40%에도 못 미친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