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작가 김수현씨 "대사를 억지로 만든 적 없지요"
"40년 인기 비결은 사람얘기"


"대사를 (억지로) 만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그냥 작업하다 저절로 튀어나오는 대사를 옮겼을 뿐입니다. 다만 '청춘의 덫'에서 심은하의 "당신 부숴버릴 거야"란 대사를 쓸 때는 잠깐 멈췄지요. 어떤 말로 하면 좋을까 조금 신경 쓴 것 중 유일하게 기억나는 대목입니다. "

'언어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김수현 작가(65)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 문화의 마당에 마련된 팬미팅 현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3회 서울드라마페스티벌이 '2008 대한민국 대표작가'로 선정한 김 작가가 팬들과 예비 작가 150여명과 만난 자리였다.

그는 40년간 드라마를 집필하면서 꾸준히 인기를 얻은 비결에 대해 "사람을 잘 그리기 때문인 것 같다"며 "특별한 소재를 찾으려고 애쓰지 않고 그냥 우리들의 이야기 가운데서 끄집어내 쓰기 때문에 계속해서 작업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특별히 신선하고 희한한 소재를 찾아 헤맸다면 오히려 오랜 세월 작업을 못했을 것이란 얘기다. 최근 막내린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가 대박을 터뜨린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언제나 심플한 이야기를 주제로 잡고 작업을 해왔습니다. 여기서는 모든 자식들에게 '부모를 바보로 생각하지 마라'란 주제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철없이 나이를 먹은 여인역을 맡은 장미희씨 덕을 많이 봤습니다. 너무 잘 타고나서 공주님으로 나이를 먹은 시어머니역이어서 욕을 많이 먹을 것으로 걱정했는데 의외로 인기를 얻더군요. 미희씨가 그 나이에도 무너지지 않고 너무 예뻤고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 철없이 늙어가는 여자였지,악랄한 본성이 있는 게 아니어서 교감이 된 것 같습니다. "

김 작가는 20대 인물을 그릴 때에는 감각이 떨어지지 않나 생각도 하지만 항상 자신 있게 쓴다고 했다. 젊은이나 나이먹은 사람이나 대동소이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무 살 이야기가 나오면 스스로 스무 살이 되고 팔십 할아버지가 나오면 그 인물이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물들에게 늘 맛깔나는 대사를 부여한다.

"내 작품에 나오는 사람들이 다 할 말을 하는 것이 내 캐릭터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내가 좀 직설적이고 할 말은 죽어도 해야 되거든요. "

김 작가는 그러나 요즘의 자극적인 드라마에는 곱지 않은 눈길을 보냈다. "최근 드라마들이 엽기,불륜,출생의 비밀 등 굉장히 자극적인 소재들을 바닥에 많이 깔고 그것들을 통틀어 비빔밥을 만듭니다. 나도 불륜 드라마를 썼지만 오로지 불륜 하나만 가지고 썼습니다. 요즘 어쩌다 후배들의 시놉시스를 보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많은지 나한테 그 시놉시스를 갖고 쓰라면 여덟 편은 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자극적인 드라마가 아니라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모습과 소통하는 것입니다. "

요즘 '베토벤바이러스'와 '신의 저울' 등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는 그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뼈있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정말 부끄럽지 않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작가들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나도 즐겁게 시청할 수 있는 작품이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그러나 요즘 드라마는 장난이 반입니다. 아무리 드라마가 오락이라고 하지만 나는 늘 작품활동으로 생각하고 일을 합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