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에 거액의 대출을 받아 무리하게 집을 구입했는데 집값은 갈수록 떨어지고 대출이자는 크게 올랐다. 주식과 펀드에 투자한 돈은 반토막이 났다. 집을 팔아 대출금을 갚으려 해도 매수 문의조차 없고 세금 부담은 무겁게 느껴진다. 더구나 미국발 금융대란은 도무지 끝을 알 수 없다는 소식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10년 전 외환위기의 고통을 겪어본 사람들이 최근의 물가ㆍ환율ㆍ유가 급등과 주식ㆍ부동산 급락,고용불안에 또다시 초조해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각종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긴장과 스트레스에 사로잡혀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누구나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렇다고 경제적 손실이 심한 정도에 비례해 스트레스가 반드시 가중되는 것은 아니다. 사업이 궁지에 몰리고 신용불량으로 고통받더라도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삼고 꿋꿋이 재기에 성공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이전에 누리던 경제적 여유가 줄어들고 직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만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도 있다.
주로 사업이나 직장에서의 성취 이외에는 다른 의미를 찾지 못하고 살아온 워커홀릭(workaholic·일중독자)이나,이렇다할 취미가 없는 무미건조한 사람들이 이런 스트레스를 잘 받는다. 이들은 자신과 남은 물론 자신의 자녀와 남의 자식들을 비교하는 것에 익숙하고 언제나 쫓기는 듯한 삶을 살아간다. 바쁘게 뛰면 남보다 앞설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여유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보다 효율이 낮기 일쑤다. 여유를 갖는 게 도움이 된다는 점이야 알긴 하지만 항시 불안감이 밀려오는 바람에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결국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로 몸이 망가진 후에야 휴식을 갖게 된다.
경제적 실패로 자살을 생각하거나 시도한 사람들을 자주 접한다. 실패로 인해 현실이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자살의 이유가 될 순 없다. 신용불량 등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통상 3개월만 지나면 새로운 현실에 적응해 잘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힘겨운 기간에 나타나는 자살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면 비극이 일어날 수 있다. 강인한 사람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스트레스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과거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고 자신의 장점을 살리며 주위의 인적 물적자원을 적절히 활용하면 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주위 사람도 자살할 정도의 심각한 우울증에 빠질 경우 관심을 보여주도록 하자.따스한 말 한마디가 구원의 손길이 된다.
부모가 과도한 스트레스나 우울증에 빠지면 자녀를 방치하게 되고 거꾸로 심한 불안증과 강박증 성향을 가진 '헬리콥터 부모'들은 자녀의 언행에 시시콜콜 간섭해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하는 것을 방해한다. 스스로 컨트롤할 줄 아는 방법을 배우면 가장 좋지만,그렇지 못하다면 정신과를 찾아 조언을 구해야 할 것이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주관적인 것으로 자신의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면 거대한 산에 깔리는 듯한 느낌이 들게 된다. 평온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바라보면 극복할 수 있는 실마리가 보이게 마련이다. 경제적인 손실을 만회할 기회를 잡는 것도 건강한 정신과 신체가 공존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명심하자.
/전홍진 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