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수 < 시인 >

도로변에 면한 집에 이사를 온 지 한 달이 지나자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던 차 소리가 웬만큼 견딜 만해졌다. 이삿짐을 풀고 나서 몇 주 동안은 귀를 후벼파는 차바퀴 소리에 지끈지끈 두통이 일곤 했는데, 한결 나아진 것을 보니 감각이 어지간히 무뎌진 모양이다.

한번은 새벽 2시쯤 따귀를 후려치는 엄청난 굉음 소리에 놀라 눈을 부비고 일어나야 했다. 창밖으로 내다본 도로엔 충돌한 차들이 뒤집혀져 있었고, 응급차와 견인차들이 요란스럽게 몰려와 있었다. 또 사고가 났구나, 심드렁하게 창문 밖을 내다보며 나는 아무런 동요 없이 사고 현장을 구경하고 있는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어느새 이런 끔찍한 사고들도 시시콜콜한 일상의 구경거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심신이 심란해서 어느날은 일찌감치 귀가해 뉴스를 보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매일같이 방영되는 자극적인 사건들이 무엇 하나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채널을 돌리며 좀 더 자극적이고 실감나는 뉴스를 찾다가 이내 지쳐버렸다. 이런 식으로라면 언젠가는 시멘트벽 같이 단단해진 각질을 거죽으로 뒤집어 쓴 채 세상의 어떤 자극에도 반응하지 못하는 존재로 살아갈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어쩌다가 내가 이 모양이 되었을까. TV를 끈 뒤,실내등 전원을 껐다. 그런데 그때, 창밖에서 무슨 소린가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희미하더니 시냇물 흐르는 소리 같기도 하고, 백양나무 잎을 뒤집으며 지나가는 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처마 끝에 매달려 있던 빗방울이 부딪치며 떨어져 내리는 것 같기도 한 소리들이 조금씩 분명해졌다. 이사 오고 나선 처음 들어보는 소리, 아 그것은 풀벌레 울음 소리였다. 4차선 도로 저편의 얼마 남지 않은 덤불숲에서 작고 여린 풀벌레 울음소리가 내 귀를 향해 무슨 신호인가를 끝없이 타전하고 있었다.

풀벌레 악단의 연주를 들으며 나는 모처럼 만에 편안한 잠을 청했다. 그 소리들은 어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듣는 심장 박동음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감각들을 말랑말랑한 반죽물처럼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그동안 풀벌레 울음소리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게 이상했다. 도로 건너편 덤불숲이 갑자기 생긴 것도 아니고, 풀벌레들이 어느날 갑자기 울기 시작한 것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풀벌레 울음소리를 그날 처음 듣게 된 데는 무슨 대단한 계기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날, 내가 한 행동이라곤 그저 피로감에 지쳐 전원을 꺼버린 게 다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단순한 행위가 방안에 어둠을 불러오고, 눈 대신 귀를 뜨게 하여 차 소리 속에 묻혀있던 풀벌레 울음소리를 청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어둠은 말하자면 풀벌레 울음이 파문져갈 수 있는 공명통과 같은 것이었다.

저물녘이 되면서 풀벌레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그 소리들을 더 잘 들을 수 있도록 불빛을 일찌감치 꺼두고 , 악단의 연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방안의 소음도 가능한 줄여보려 애를 쓴다. 그러다 보니 온몸의 감각들이 기민해지는 게 더 잘 느껴진다. 처음에는 하나에 지나지 않았던 풀벌레 울음소리가 이제는 저마다의 다른 악기들이 모여 내는 소리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다채로운 악기 소리들에 대한 각성이 지속되기 위해선 얼마쯤 마음의 정전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가을날, 저물어가는 것들을 생각한다. 저물대로 저물어 깊어진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 음들, 그들이 내게는 별이다. 눈을 감고 있으면 그 별빛들이 더 잘 보인다. 뿌리로 돌아가는 낙엽처럼 저물 줄 안다는 것, 그것은 자신의 중심을 한번쯤 들여다보는 일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