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업그레이드] 권력 이동의 가속화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외환위기 때 일류 골프장 회원권값이 수천만원대로 떨어지더라고.그런데 현금이 없는 거야.다시 한 번만 기회가 온다면 반드시…."
2000년께 만난 어느 중소기업 사장이 주먹을 불끈 쥐며 하던 얘기다. 이후 그 골프장 회원권값은 5배가 올랐다. 최근 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현금은 무슨.펀드에 다 넣었는데 반토막 났어."
다시 위기의 시대가 왔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미국 의회의 금융구제법안 부결파동까지 겹치면서 끝 간 데 없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환율까지 생각하면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는 나라 가운데 대표격이 됐다. 사업이 안되던 회사는 말할 것도 없고, 사업 잘하던 업체들도 외국과의 거래에서 숨막혀한다. 당국이 이 눈치 저 눈치 주는 바람에 달러가 필요한 구매나 협상을 하기 어려워서다.
일반인이 느끼는 불안감도 예사롭지 않다. 장사가 하나도 안되는데 신규대출은 막히고,이자가 늘면서 부채는 날이 갈수록 부담이 커간다. 여기다 세계의 리더들이 앞다퉈 "이 위기가 언제까지 갈지 알 수 없다"는 식의 체념어린 발언을 연일 쏟아내고 있어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예년의 경우 연말 특수가 있어 기대를 갖고 시작했던 4ㆍ4분기의 첫날,한국의 모습은 이랬다.
이후 벌어질 일들은 누구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 본격화될 것이다. 기업들은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허리띠를 졸라맬 것이다. 수금 빨리 하고, 불필요한 지출 줄이고, '사람수'도 고민하기 시작할 것이다. 정부는 중소기업을 도와주라고 은행을 채근하겠지만 그때를 출발점으로 중기쪽 자금은 말라갈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구조조정의 바람은 더욱 거세질 게 분명해 보인다.
모두들 비상이 걸려야 정상이다. 그러나 경영자라면 이 위기에서 떨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위기를 보는 눈이 남과 달라야 한다. 위험이 아니라 기회를 찾아내야 한다. '폭락한 골프장 회원권'을 욕심내야 옳다.
세계적인 금융위기에서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변화의 큰 줄기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권력 이동(power shift)의 본격화 현상이다. 경제위기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지만 미국과 유럽에 비한다면 아시아와 중동은 한결 몸집이 가볍다. 보이지 않는 금융에서 보이는 실물중심으로 업종 신뢰도가 바뀌고 있는 것도 새로운 흐름이다.
이런 변화의 단초는 1990년대부터 고령화가 본격화되고 인터넷이 주류매체로 부상한 이후 수차례 감지됐다. 여성이 소비의 중심이 되고, 나라보다는 도시의 경쟁력이 더 중요해지고, 상사보다는 부하의 판단이 더 현실적인 것으로 평가받는 시대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1990년에 출간한 '권력이동'에서 "권력이 다른 나라나 기업,개인으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본질 자체가 변화해 지식정보계층이 그 중심이 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지식과 정보로 무장한 투자은행들이 줄줄이 몰락하고 있는 것을 보면 권력이동의 양태는 토플러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민간으로 이동했던 경제 파워가 금융위기를 계기로 정부로 다시 옮겨갈 조짐도 보인다.
분명한 것은 힘의 균형이 깨지고 있다는 사실이고 새로운 성장 에너지가 그 속에 들어 있다는 점이다. '기득권'이 무의미해지고 새로운 '권력'이 자라날 여지도 생겼다. 우리 기업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내는 계기가 된다면 이 경제위기도 의미 있는 수업이 될 것이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
2000년께 만난 어느 중소기업 사장이 주먹을 불끈 쥐며 하던 얘기다. 이후 그 골프장 회원권값은 5배가 올랐다. 최근 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현금은 무슨.펀드에 다 넣었는데 반토막 났어."
다시 위기의 시대가 왔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미국 의회의 금융구제법안 부결파동까지 겹치면서 끝 간 데 없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환율까지 생각하면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는 나라 가운데 대표격이 됐다. 사업이 안되던 회사는 말할 것도 없고, 사업 잘하던 업체들도 외국과의 거래에서 숨막혀한다. 당국이 이 눈치 저 눈치 주는 바람에 달러가 필요한 구매나 협상을 하기 어려워서다.
일반인이 느끼는 불안감도 예사롭지 않다. 장사가 하나도 안되는데 신규대출은 막히고,이자가 늘면서 부채는 날이 갈수록 부담이 커간다. 여기다 세계의 리더들이 앞다퉈 "이 위기가 언제까지 갈지 알 수 없다"는 식의 체념어린 발언을 연일 쏟아내고 있어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예년의 경우 연말 특수가 있어 기대를 갖고 시작했던 4ㆍ4분기의 첫날,한국의 모습은 이랬다.
이후 벌어질 일들은 누구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 본격화될 것이다. 기업들은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허리띠를 졸라맬 것이다. 수금 빨리 하고, 불필요한 지출 줄이고, '사람수'도 고민하기 시작할 것이다. 정부는 중소기업을 도와주라고 은행을 채근하겠지만 그때를 출발점으로 중기쪽 자금은 말라갈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구조조정의 바람은 더욱 거세질 게 분명해 보인다.
모두들 비상이 걸려야 정상이다. 그러나 경영자라면 이 위기에서 떨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위기를 보는 눈이 남과 달라야 한다. 위험이 아니라 기회를 찾아내야 한다. '폭락한 골프장 회원권'을 욕심내야 옳다.
세계적인 금융위기에서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변화의 큰 줄기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권력 이동(power shift)의 본격화 현상이다. 경제위기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지만 미국과 유럽에 비한다면 아시아와 중동은 한결 몸집이 가볍다. 보이지 않는 금융에서 보이는 실물중심으로 업종 신뢰도가 바뀌고 있는 것도 새로운 흐름이다.
이런 변화의 단초는 1990년대부터 고령화가 본격화되고 인터넷이 주류매체로 부상한 이후 수차례 감지됐다. 여성이 소비의 중심이 되고, 나라보다는 도시의 경쟁력이 더 중요해지고, 상사보다는 부하의 판단이 더 현실적인 것으로 평가받는 시대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1990년에 출간한 '권력이동'에서 "권력이 다른 나라나 기업,개인으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본질 자체가 변화해 지식정보계층이 그 중심이 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지식과 정보로 무장한 투자은행들이 줄줄이 몰락하고 있는 것을 보면 권력이동의 양태는 토플러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민간으로 이동했던 경제 파워가 금융위기를 계기로 정부로 다시 옮겨갈 조짐도 보인다.
분명한 것은 힘의 균형이 깨지고 있다는 사실이고 새로운 성장 에너지가 그 속에 들어 있다는 점이다. '기득권'이 무의미해지고 새로운 '권력'이 자라날 여지도 생겼다. 우리 기업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내는 계기가 된다면 이 경제위기도 의미 있는 수업이 될 것이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