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외화유동성 문제가 기업의 외화자금난으로 전이(轉移)되고 있다.

국민은행 등 은행들이 만기가 돌아오지 않은 달러대출 등에 대해서도 상환을 독촉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달러가 부족한 만큼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기업들은 심각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은행 "외화대출 적극 관리"

은행들은 리먼브러더스의 파산보호 신청 이후 국제 자금시장이 얼어붙어 1억달러 이상의 차입은 꿈도 꾸기 어렵다. 산업은행은 지난주 10억달러 규모 글로벌 본드 발행 계획을 연기했고 수출입은행과 우리은행,농협 등도 잇따라 해외 채권 발행을 늦추는 등 은행권의 외화자금난이 심화되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홍콩 등의 시장에서 오버나이트(하루짜리) 달러대출 금리가 한때 연 12%까지 뛰기도 했다"며 "이는 1998년 외환위기 때의 연 15% 수준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달러를 외국 은행으로부터 차입해 국내 기업에 대출해 준 은행으로선 달러를 다시 외국 은행에 갚기 위해선 국내 기업에 대한 달러대출금을 회수할 수밖에 없다. 국민은행이 자금용도 제한,외화대출에 대해 만기전 조기상환에 들어간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은행이 이처럼 조기상환에 나섬에 따라 다른 은행들도 같은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은행들은 올해 중반부터 외화대출 만기가 돌아오면 기한연장을 가급적 줄이고,기한연장을 해 준다 하더라도 금리를 높이며,지점장의 전결권을 축소하는 등 외화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업들 "중도 회수하면 어떡하나"

은행들의 외화대출은 지난 4월부터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국민 신한 우리 하나 등 4개 시중은행의 외화대출 총액은 지난 3월 말 163억달러에서 6월 말 152억달러,7월 말 150억달러 수준으로 감소했다. 기업들은 그러나 앞으로 외화대출 회수 속도가 더 빨라지고 규모도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국민은행을 포함한 각 은행들은 환율 상승에 따른 외화대출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환차손이 증가하면 대출받은 업체의 상환능력이 저하될 가능성,채권보전 상태의 보전 여부 등을 꼼꼼히 따져보고 있다.

한 기업체 자금 담당자는 "원·달러 환율 900원대에 받은 달러대출을 1100원대에 상환하려고 하면 달러당 200원의 손실이 불가피하다"며 "은행들도 어렵겠지만 고통을 분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은행들이 외화대출을 일거에 회수하면 상환불능 상태에 빠져 결국 은행에 손실이 갈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은 "각 기업의 사정을 감안해 외화대출을 원화대출로 바꿔주는 방안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