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마이클 코어스는 일찍이 "무릇 인간이 가장 아름답고 패셔너블해 보일 수 있는 나이는 35세"라고 강조했다. 또 벨기에 출신 유명 디자이너 앤 드뮐레미스터는 '2009 S/S(봄ㆍ여름) 남성 컬렉션'에서 백발이 성성한 모델들을 패션쇼에 내세웠다. 너무나 매력적인 그들의 옷차림 역시 35세 남성의 패션과 진배 없다.

그렇다. 패션 디자이너들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사람의 신체 나이는 더해지게 마련이지만 패션 시계만큼은 항상 35세 언저리를 가리키고 있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왜 하필 35세일까. 그것은 클래식을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는 '가장 젊은' 나이,즉 단순히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경박한 스타일이 아니라 진정 패셔너블한 클래식을 입을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해외 스타나 셀러브리티(유명 인사)들이 나이에 관계 없이 항상 35세처럼 입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1961년생 조지 클루니나,1963년생 브래드 피트,혹은 최고의 패션 아이콘으로 급부상한 1968년생 카를라 브루니….반면 '아이돌' 전성시대인 국내 연예계에선 이렇게 나이가 들어도 패셔너블한 스타일을 유지하는 스타를 찾아볼 수 없어 늘 아쉬웠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TV 주말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 부부로 출연 중인 김용건ㆍ장미희를 보고 난 뒤엔 생각이 달라졌다. 그들은 해외 스타나 조인성,강동원,김민희 같이 젊은 스타와는 다른 차원의 격조 높은 패셔너블함을 보여준다. '아!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해지는 인생의 깊이를 옷차림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는 배우들이 있구나. '

두 중년의 배우가 보여주는 주말 저녁 현란한 패션쇼는 분명 '엄마가 뿔났다'의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결국 KBS 별관 세트장에서 막바지 촬영에 열중하는 두 배우를 직접 찾아갔다.

장미희가 연기하는 '고은아'는 현대판 왕비처럼 화려한 삶을 산다. 이런 주목받는 스타일을 만들어낸 조윤희 스타일리스트의 설명을 들어보자."장미희 선생님이 워낙 패션에 조예가 깊어 옷 고르기가 쉽지 않아요. 엄숙하고 단아한 분위기뿐 아니라 팜므파탈 같은 이미지까지 능수능란하게 넘나들 수 있는 건 본인 자체가 워낙 옷을 좋아하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그는 옷을 고를 때 무척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해요. 전체적으로는 단순하지만 복잡한 디테일이 가미된 걸 선호하죠."

실제 촬영장에서 만난 장미희는 이탈리아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의 고급스러운 회색 드레스에 커다란 주얼리를 매치해 '35세 패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항상 럭셔리 브랜드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마지막 촬영 신에서 입을 잠옷은 장미희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무척 저렴하게 구입한 거예요. 반면 지금 신은 하이힐도 개인 소장품인데 크리스찬 루부탱이죠.가격보다는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걸 고집하는 편이예요. " (조윤희 스타일리스트)

개인 스타일리스트를 따로 두지 않은 김용건도 마찬가지다. "저는 워낙 젊은 시절부터 패션에 관해 관심이 남달랐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내일 입을 착장을 반드시 입어봐야 직성이 풀렸으니까요. "

날로 아방가르드해지는 여성 패션과 달리 최근 남성복은 최대한 디테일을 자제하고 소재와 실루엣의 고급스러움으로 승부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김용건 스타일의 가장 큰 특징 역시 소재와 실루엣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나이에 비해 과감한 아이템에 도전하는 그의 패션이 결코 눈에 거슬리지 않는 건 바로 이 때문.

남성지 '아레나'의 박만현 패션 에디터는 김용건을 두고 "뚜렷한 주관을 가진 패션 피플의 전형"이라고 거듭 칭찬한다. "남성복은 여성복과 달리 유행을 덜 타기 때문에 '투자'라는 개념으로 옷을 사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재킷 코트 같은 기본적인 모델은 좋은 것을 한번 사놓으면 두고 두고 써먹을 수 있죠.김용건 패션도 장미희처럼 기본과 파격이 적절히 섞여있는 모범 사례입니다. "

물론 "장미희와 김용건은 나이를 거꾸로 먹는 듯한 이기적인 몸매를 가졌기에 옷맵시가 남다른 거 아니냐"고 입을 삐죽거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용건ㆍ장미희 패션,즉 '35세 패션'의 장점은 굳이 S라인이 아니라도 충분히 멋지게 소화해 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바로 '클래식의 힘' 아니겠는가. 장미희와 김용건! 강렬한 태양 아래 활짝 피어나는 5월의 초록 새싹보다 고독이 묻어나는 스산한 바람과 함께 하는 9월의 갈색 낙엽이 더 아름다울 수 있음을 증명하는 진정한 패셔니스타이다. 이 가을 그들의 패션을 교본삼아 자신의 스타일을 새롭게 정립해 보는 것은 어떨까.

김현태 월간 '하퍼스 바자' 패션 에디터
사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 '35세 클래식 패션' TIP

◆회색 팬츠=패션에 정통한 남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바지는 모두 잿빛 일색이다. 길이는 신발 굽 중간까지 내려오는 게 적당하고 앞 주름이 없는 노턱 팬츠가 좋다.

◆재킷=가장 중요한 것은 버튼 수와 칼라.트렌디한 원 버튼이나 다소 보수적인 쓰리 버튼 재킷보다 투 버튼 재킷이 훨씬 유용하다. 라펠(옷깃) 또한 자칫 가벼워 보일 수 있는 피크드 칼라보다 정통 테일러드 칼라가 멋스럽다.

◆셔츠=당신의 옷장에 스트라이프나 현란한 패턴의 셔츠가 있다면 당장 내다버려도 좋다. 이지적인 화이트 셔츠와 자유로운 감성의 블루 셔츠,그리고 댄디한 블랙 셔츠.앞으로 셔츠를 고를 땐 이 정도만 머릿 속에 넣어두는 게 좋다.

◆구두=남성 패션에서 구두의 중요성은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정 자신이 없다면 구두코가 뭉툭하지 않은 가장 기본적인 윙팁 슈즈를 선택한다.



◆드레스=잘 재단된 심플한 드레스면 만사 오케이.일명 LBD(리틀 블랙 드레스)로 불리우는 짧은 미니 드레스는 두고 두고 수 많은 패션 아이콘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단,코르사주 같은 화려한 장식으로 포인트를 주는 걸 잊지 말기를.

◆액세서리=최근 패션 트렌드는 심플한 옷에 화려하기 그지 없는 액세서리를 신는 것.로저 비비에나 세르지오 로시 같은 슈즈 브랜드뿐 아니라 패션 브랜드에서도 아찔한 높이의 힐이나 대담한 디자인을 대거 선보여 사랑받고 있다.

◆백=손에 드는 토트백보다 어깨에 메는 숄더백이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화려한 장식의 이브닝 백도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크기 역시 점차 커지고 있는 추세.

◆코트=가을♥겨울 시즌을 겨냥해 나온 코트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남성 코트에서 영감을 얻은 것들이다. 라인이 잘 드러나지 않는 풍성한 코트 안에 드레스처럼 극히 여성스러운 옷을 받쳐 입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