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이 대통령에게까지 욕설을 퍼붓는 세상이다. 과연 잘 돼가는 세상일까. 초등학생에게도 불만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의사표시 방법으로서 욕설은 문제가 많다. 상대가 대통령이어서가 아니다. 욕설 그 자체가 우리 사회를 감정폭발의 사회로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욕설을 한두 번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불만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나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했을 때,억울함이 극에 달했을 때는 분노가 폭발한다. 그 분노를 주먹으로 표현하면 폭력이 되고,말로 표현하면 욕설이나 공격적인 언사가 된다. 욕설은 언어적 폭력인 셈이다.

근본적으로 이 나라에 아동ㆍ청소년에 대한 인성교육이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아이들이 욕설을 하든,침을 뱉든 오냐오냐하기에 급급하다. 음식점에서 소리치고 돌아 다니든,전철에서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든,인터넷에서 무슨 소리를 퍼붓든 제대로 가르치는 이들이 없다. 부모에게 대들거나 선생님에게 대들어도 속수무책이다. 지도를 포기한지는 오래인 듯하고 오히려 아이들을 달래는 데 급급하다.

왜 이럴까. 첫째,부모나 선생님들이 지도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들의 욕설은 습관이다. 주먹질 같은 폭력도 마찬가지다. 어린이들은 아직 사리분별력이 성숙한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욕설 및 폭력의 의미나 결과에 대해 인식이 적다. 단순한 감정 표출방법으로 인식해 습관적으로 실행할 뿐이다. 따라서 그 습관을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세 살 버릇 이야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둘째,지도의 방법을 잘못 선택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나쁜 행동을 했을 때 어른들은 대체로 야단치며 윽박지르는 방법을 사용한다. 심지어 소리치고 때리기까지 한다. 이는 옳은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잘못된 행동패턴을 가르칠 뿐이다. 아이들은 야단치는 소리에 순간 잘못임을 깨닫기는 한다. 그러나 이는 자신이 스스로 깨닫는 것이 아니라 타력에 의해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깨달음의 효과가 적다. 또한 소리치고 야단치는 방식을 그대로 답습해 배운다. 나아가 반발심을 일으켜 사태를 더 악화시키기도 한다.

어린이ㆍ청소년들에 대한 기초인성교육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부모나 선생님이 아이들의 잘못에 대해 기를 살려 준다는 명목으로 오냐오냐해서는 안 된다. 기는 살려주되,가르칠 것은 가르쳐야 한다. 대신 강압적인 방법을 써서는 안 된다.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을 써야 한다. 스스로 감동해 깨닫게 하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또 한 가지,좋은 행동에 대한 칭찬과 나쁜 행동에 대한 지도는 원칙에 입각해 공정해야 한다. 이 원칙이 무너지거나 공정성에 의문이 생기면 질서는 파괴된다.

운동경기에서 심판이 공정하지 않으면 어느 누가 규칙을 지키려 하겠는가. 마찬가지로 사회의 법질서도 공정한 법집행이 선행돼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법대로' 하자는 말은 너무 당연한 말임에도 오히려 야박하고 정 떨어지는 소리로 이해된다. 여기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이 땅에 법이라는 제도가 일제침략자들에 의해 도입되면서 법은 약탈의 수단이라는 피해의식을 심어 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법집행은 청탁과 뇌물,비리의 온상이라는 불신까지 가득한 것도 원인이다.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 국민들은 준법과 기초질서 준수에 나설 뿐 아니라 국가기관은 투명하고 공정한 법집행에 철저해야 한다. 두 가지 과제를 모두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인식 하에서 어린이·청소년들에 대한 기초인성과 기본질서 유지를 위한 다양한 교육방안을 강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