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마니아' 중에 여성 지휘자가 이끄는 오케스트라 연주를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클래식계에 많은 여성 음악가가 있지만 포디엄(지휘석) 위에 오른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동양인 중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미국 보스턴심포니의 부지휘자로 활약 중인 성시연씨(32·사진)는 세계 무대에서 2세대 여성 지휘자로 통한다. 마린 앨솝 볼티모어심포니 음악감독과 시몬 영 함부르크필 음악감독이 1세대라면 성씨는 뉴욕필 부지휘자인 시앤 장과 함께 차세대 여성 지휘자로 꼽힌다.

성씨가 지난 1월에 이어 두번째 국내 무대를 갖는다. 그는 오는 1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서울시향의 '고전주의 협주곡 시리즈 II' 음악회에서 지휘한다. 성씨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지난 7월 탱글우드 페스티벌에 참가해 큰 감동을 받았어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핀커스 주커만의 연주를 보고 어느 위치까지 올라가겠다는 욕심보다는 주커만처럼 관객의 마른 목을 적실 수 있는 지휘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요. "

그가 탱글우드 페스티벌을 찾은 1만여명의 관객 앞에서 보스턴심포니와 함께 연주한 멘델스존의 교향곡 4번 '이탈리아'는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언론으로부터 "아름답고 투명하면서 활력 있는 연주"라는 호평을 받았다.

성씨가 처음부터 지휘자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서울예고를 졸업하고 스위스 취리히 음대에서 피아니스트의 길을 가던 그는 오른쪽 팔과 손목 근육통으로 더 이상 연주를 할 수 없게 됐다. 그 때 본 것이 '전설의 거장' 푸르트뱅글러가 지휘하는 베를린필의 브람스 교향곡 4번 연주 실황이었다. 열정적인 연주로 '현 위의 꼭두각시'라는 별명을 얻은 거장답게 누구보다 격정적인 브람스를 만들어냈다.

성씨는 이를 계기로 지휘를 공부하기 위해 독일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 진학해 롤프 로이터 교수를 사사했다. 이후 2003~2006년 베를린의 명문 훔볼트 대학 교향악단인 카펠라 아카데미의 수석지휘자로 활동했고,2006년 게오르크 솔티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대상을 받는 '이변'을 일으키며 세계에 이름을 날렸다. 로이터 교수가 그를 처음 봤을 때 "지금 어느 유명한 여성 지휘자보다 더 크게 될 것"이라고 한 말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성씨의 가장 큰 장점은 어린 나이에도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강력한 리더십을 갖췄고,곡에 대한 해석도 깊이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그는 "리더십은 누가 누구를 특별히 이끈다는 게 아니라 같이 음악을 한다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며 "왜 내가 지금 이것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본질을 물은 다음,왜 이렇게 해야 한다는 나의 의지로 단원들을 설득한다"고 말했다.

최근 성씨의 고민은 "자기만의 길을 찾는 것"이다. 주어진 재능으로 콩쿠르에 입상하는 단계를 넘어 이제는 전문적인 연주를 해야하는 지휘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행히 보스턴심포니에 오는 여러 지휘자들을 보고 그들과 얘기할 수 있어 지휘 공부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시벨리우스의 '레민카이넨의 귀향',무소르크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연주한다. 여기에 2008/2009 시즌 네덜란드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상주 아티스트로 활동 중인 크로아티아 출신의 신예 피아니스트 데얀 라지치가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제4번을 협연한다. 음악회 이틀 전인 17일에는 음악칼럼니스트 진회숙씨가 진행하는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 시간이 마련된다. (02)3700-6300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