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은행권 차입과 회사채 발행을 대폭 늘리는 등 자금 확보를 서두르고 있다. 재고 증가,대금 회수 지연 등으로 영업현금흐름(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이 악화되고 있는 것도 골칫거리지만 향후 경기침체에 따른 경영환경 악화에 서둘러 대비한다는 차원에서다.

3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은행들의 대기업 대출잔액은 45조6000억원으로 작년 말 31조6000억원에 비해 14조원 증가했다. 작년 하반기 순 증가액 6조9000억원의 2배 수준이다.

한국은행이 조사한 대기업들의 원화대출(은행신탁 포함,산업은행 제외)은 7월 한 달 동안 3조원이나 늘어났다. 우리은행의 경우 대기업 대출 잔액이 6월 말 10조9000억원에서 8월 말 12조5000억원으로 두 달 새 1조6000억원 증가했다. 회사채 발행도 올해 상반기 13조2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8% 증가했다. 7월에도 1조7052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29.8%나 늘었다.

기업들이 이처럼 '자금 빨아들이기'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보다 경기 악화다. 게다가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의 여파가 길어지면서 해외 차입이나 채권 발행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도 자금 확보를 서두르게 만들고 있다.

증권선물거래소에 상장된 12월 결산 567개사의 여유자금은 6월 말 현재 392조2423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이는 상위권의 '잘나가는 기업' 얘기일 뿐 대다수 기업들의 현금흐름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LG경제연구원은 이날 내놓은 '국내 기업 현금흐름이 불안하다'는 보고서에서 코스피 상장기업 중 비금융기업의 매출액 대비 영업현금흐름 비율이 지난 상반기 1.1%로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3.7%)보다도 낮아졌다고 밝혔다. 작년까지만 해도 4.5%였지만 올 들어 급격히 악화됐다는 것이다. 또 조사대상 608개 기업 가운데 280개 기업(46.1%)의 상반기 영업현금흐름이 마이너스로 조사됐다. 이는 재고가 늘고,고객의 자금사정이 좋지 못해 매출채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박상수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하반기에는 경기가 더 나빠져 기업들의 영업현금흐름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은행 대출이나 회사채 발행 등 외부 자금조달을 늘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형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