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리 리포트] 칠레 (下) 환경이 돈이다 ‥ 돼지분뇨 재처리해 물ㆍ퇴비ㆍ전기 만든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국토의 동쪽에 마치 척추처럼 안데스 산맥을 끼고 있는 칠레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청정하고 깨끗한 자연을 자랑한다. 남북으로 4000㎞ 넘게 뻗어 있는 국토의 특성상 동시에 4계절을 갖고 있는 이 나라는 북쪽의 황량한 사막지대로부터 생태계의 보고로 불리는 남쪽의 파타고니아 지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후대에 걸친 때묻지 않은 경관을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소중한 자연환경을 지키고 개발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칠레는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의 친환경 생산시스템을 고안해냈다.
규제가 아닌 업계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지속가능한 개발과 환경보호를 절묘하게 절충해 낸 청정생산협약(Cleaner Production Agreement)이 바로 그것이다.
◆자발적 참여를 통해 환경 친화적 생산 추구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남쪽으로 130㎞가량 떨어진 페랄릴로 지역.칠레를 대표하는 농축산 업체 아그로수퍼의 축산 분뇨 처리 시설 바이오다이제스터가 있는 곳이다. 축구장 넓이 만한 분뇨 처리장을 가득 메운 분뇨에서는 그러나 거의 악취는 나지 않았다.
파이프를 통해 나온 처리약품과 화학반응을 통해 한참 재처리가 진행되고 있는 참이었다. 옆에 위치한 수로를 통해 흘러나오는 정제된 보리차색의 축산 폐수는 손을 씻어도 좋을 만큼 깨끗했다. 이 회사 바이오다이제스터 기술센터 소장인 로드리고 아길라는 "재처리된 물을 인근 작물재배에 사용한다"며 칠레는 물론 전 세계 축산업계를 통틀어 가장 완벽한 분뇨 처리 시설이라고 자랑을 늘어놨다.
이 업체가 이 같은 시설을 갖추게 된 것은 청정생산협약, 즉 CPA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CPA는 민간기업들이 생산하는 제품의 품질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고 동시에 환경보호도 도모하기 위해 칠레 정부와 특정 산업분야 또는 개별기업 간 체결하는 협약이다. 협약은 일정한 기간을 정해 그 기간 동안 특정 기업 또는 산업 전체가 달성할 목표를 정한다. 목표로는 일정 수준 이상 제품의 질이나 기준, 폐수나 대기오염 물질의 감축치 등이 주 대상이 된다. 목표는 정부와 기업 간 협의에 의해 정해지며 목표가 설정되면 구체적인 실행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를 하고 최종적으로 협약을 맺게 된다.
CPA의 실행방안은 4가지 단계의 우선순위를 갖는다. 가장 중요한 것이 오염예방 활동이며 그 다음은 오염감축, 오염의 적절한 관리,그리고 마지막으로 오염이 불가피한 경우 오염물질의 처리 등으로 이뤄진다.
정책의 활성화를 위해 정부에서는 환경 인프라 비용의 70%까지 지원하고 필요한 기술적인 지원도 제공한다. 그러나 정부가 참여를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정부와의 협약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잠재적 이익과 발전가능성을 진단하여 자발적으로 협약에 참여하는 것이 CPA의 특징이다. 제너럴일렉트릭(GE)에서 에코이즘을 실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정부가 그 가이드라인과 동기부여를 해 준다는 점에서 다르다.
칠레 정부는 CPA 체결을 위해 이를 전담하는 민관 합동 기구인 청정생산위원회(National Council of Cleaner Production)를 1998년 조직,운영하고 있다. 각각 6개 정부 부처와 민간단체들로 구성된 이 기구는 협약체결 대상 기업이나 산업이 당초 협약에서 정한 목표를 100% 달성했을 경우 CPA 인증서를 발급해준다.
◆환경 친화적 생산이 결국 더 경제적
기업들은 단기적인 이익에 급급하게 마련이지만 CPA는 청정생산을 통해 자연환경 보호와 품질관리 향상이라는 두가지 목표를 달성하면 그것이 결국 장기적으로 기업에도 이익이 된다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청정생산위원회 기술부문 부국장 마우리시오 일라바카씨는 "인증서를 받은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은 정부가 품질을 보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환경보호에도 앞장선 기업으로 간주된다"며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청정생산협약에 가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협약에서 정한 각종 기준을 충족하려면 추가 비용이 든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환경 관련 법규를 위반했을 때 내는 벌금 액수를 감안하면 협약을 준수하는 것이 결국 더 경제적"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협약을 지키지 않아도 아무런 제재는 없지만 협약 내용을 위반하는 업체는 거의 없다는게 그의 전언이다.
현재 이 협약을 체결한 기업은 모두 2720개로 여기에 포함된 사업장만도 4775개에 달한다. 특히 참여 기업 중 중소기업이 80%가량을 차지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환경관련 투자를 하기 어려운 소규모 기업들이 이 협약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칠레에서 청정생산협약이 탄생하게 된 데는 역사적 배경도 한 몫했다. 칠레는 역사적으로 공산주의 정부,철저한 통제 정부,쿠데타 등을 겪으면서 기업과 정부 간 관계가 오랫동안 좋지 않았다. CPA는 정부와 기업의 자발적 협약을 통해 민관 간 신뢰를 구축하고 정부와 기업의 비전을 나누는 데도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다.
교토의정서 등 환경오염과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범 세계적인 규제 움직임에 미리 대비하기 위한 목적도 물론 있다. 칠레는 교토의정서에 의한 온실가스 의무감축 대상국은 아니지만 2013년 이후 개도국에도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지워질 경우 CPA를 체결한 칠레 기업은 훨씬 유리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산티아고(칠레)=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