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태 대표와 차명진 대변인 등 한나라당 지도부가 최근 기업인 사면을 계기로 대기업의 투자를 압박하는 모양새를 취한 데 대해 당내에서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다.

당초 투자여건 개선을 위해 기업들과 약속했던 규제개혁,법인세 인하 등이 하나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면해줬는데 투자를 안한다"고 압박하는 건 시장원리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공성진 최고위원은 25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난주 우리 당의 일부 지도부가 마치 기업이 의도적으로 일자리 창출이나 투자를 하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했는데 기업의 생리라는 건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으면 언제든지 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감세와 규제개혁으로 그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며 "소신과 원칙을 갖고 밀고 나간다면 1~2년 뒤에는 그 성과가 국민들의 몫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내 대다수 의원들은 특히 사면과 투자를 마치 거래의 대상으로 표현한 데 대해 우려하는 분위기다. 이한구 의원은 "그렇게 따지면 사면을 안 받은 기업은 투자하지 않아도 되느냐"고 반문한 뒤 "기업들의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은 경제논리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정부 출범 후 몇 달을 허송세월하는 통에 진도가 안 나가고 경제는 자꾸 나빠져 여당 입장에서 조바심이 나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국회가 투자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기업들이 현금을 쌓아놓고 있는 건 적대적 M&A(인수합병)에 대한 불안감도 큰 요인"이라며 "적대적 M&A 방어 장치를 도입하는 상법개정안도 빨리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일호 의원은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내가 대통령이 되니까 기업들이 일부러 투자를 안 하는 게 아니냐'고 말한 적이 있는데 '사면해줬는데 왜 투자를 안 하냐'는 건 노 전 대통령과 똑같은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유 의원은 "솔직히 그런 식으로 투자액수를 늘려 발표하는 건 나중에 투자할 거 미리 당겨서 하는 것인데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한 뒤 "법인세 인하를 1년 연기한다고 하는데 법인세 인하가 마치 기업 소유주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으로 보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나성린 의원은 "기업들도 투자하고 싶은데 규제완화 같은 것들이 제대로 안 되니까 답답해 하는 것 같다"며 "9월 정기국회가 열려 투자환경 개선과 관련된 법안들이 빨리 통과되면 상황이 다소 좋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