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리 리포트] 호주 (1) 지금은 폭탄 세일중 ‥ 자원달러 넘쳐나지만 소비심리는 '꽁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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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트리 리포트] 호주‥지금은 폭탄 세일중
지난 주말 호주의 경제 중심지인 시드니. 도심의 백화점과 상가에는 적게는 25%에서 많게는 75%의 세일을 알리는 안내문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호주의 회계연도는 7월에 시작해 다음 해 6월말에 끝나 대부분의 유통업체들은 상반기 실적과 전체 실적을 좋게 하기 위해 6월 말~7월 ,12월 말~1월 초 세일을 집중한다. 지금의 세일은 제철도 아닌데 이뤄지는‘폭탄 세일’인셈이다. ◆자원달러의 역설
세계 최대의 석탄 및 철광석 수출국으로 자원 달러가 넘쳐나는 호주에서 폭탄 세일이 등장한 이유는 뭘까.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원 달러다. 호주 경제는 4%대의 경제성장률을 지속해왔다. 중국 인도 등에서 자원 수요가 늘어 국제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자원부국 호주가 호황을 맞았다.
급속하게 불어난 자원달러가 임금과 물가 상승을 자극하자 호주 정부는 금리 인상으로 대응했다. 호주중앙은행(RBA)은 2005년 3월 5.5%였던 기준금리를 지난 3월 7.25%까지 높였다. 시중은행들은 대출 금리를 10% 안팎까지 올렸다. 호주에선 일반적으로 주택매입 자금의 80%가량을 모기지 론으로 충당한다.
대출금리 인상은 '모기지론 이자 증가→가계 가처분 소득 급감→소비지출 둔화→폭탄 세일→경제성장 둔화'라는 악순환 고리를 형성했다.
호주의 자원달러는 중동의 오일머니와 성격이 다르다. 중동 국가들은 오일머니를 도로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투입,경기를 부양할 수 있다. 하지만 호주의 자원달러는 BHP빌리톤,리오틴토,웨스트필드그룹 등 자원 기업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자원달러가 아무리 많더라도 호주 경제의 전반적인 투자로 이어지기 힘든 구조다.
지난 1분기 광산과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8.5% 늘어났지만 기계 및 설비투자는 1.5% 감소했고 주택건설 투자가 현상 유지에 그친 건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상황에서 풍부해진 유동성을 잡으려고 고금리 정책을 펴자 소비지출이 줄고 경제 전반이 영향을 받는 '자원달러의 역설'이 고개를 든 것이다. 호주 경제는 경기가 매우 좋은 에너지 산업과 매우 좋지 않은 일반 가계로 나뉘는 2중 속도(two speed) 상태라는 지적(스티븐 로버츠 리만브라더스 이코노미스트)도 나온다.
주요 기관들은 올해 호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다. IMF(국제통화기금)는 지난해 10월엔 3.8%로 예상했으나 지난 4월엔 3.2%로 낮췄다.
지난해 5월 3.3%로 예상했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지난 6월 2.7%로 수정해 발표했다. 웨스트팩ㆍ멜버른연구소는 최근 2.1%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중되는 모기지 스트레스
시드니 서부 외곽의 아파트 밀집지역인 웨스트 미드.중산층들이 주로 거주하는 이곳에는 토요일마다 진풍경이 펼쳐진다. 아파트 유리창과 도로 곳곳에 'For Sale'이란 문구와 연락처가 적혀 있는 안내판이 덕지 덕지 붙는다.
토요일을 이용해 집을 둘러보는 잠재 매수자들을 유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아파트 매물은 계속 나오고 있지만 매수세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인근 부동산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호주에선 임대료를 매주 단위로 내고 있어 주택 장만 욕구가 높다. 한번 집을 마련하면 장기 보유한다. 그럼에도 최근 들어 매물이 쏟아지는 것은 '모기지 스트레스'(주택구입자금 대출 이자부담) 때문이다.
호주의 한 연구기관 조사에 따르면 호주인들은 평균 45만달러짜리 주택을 소유하고 있고 모기지 론은 평균 34만달러가량으로 추정된다.
연 10%의 금리를 적용하면 이자만 3만4000달러에 달한다. 연봉 7만달러 직장인이라면 급여의 절반가량을 이자로 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모기지 스트레스는 호주 사회에 새로운 풍속도를 그리고 있다. 시드니 외곽의 청과물 도매시장인 플레밍턴 마켓은 토요일마다 인파로 붐빈다.
일주일에 한 번 일반인에게도 과일 야채 등을 도매가격 수준으로 팔기 때문이다. 기름값이 주중에 가장 낮은 화요일에는 주유소마다 기름을 넣으려는 자동차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적극 대응 나선 호주 정부
호주 정부는 최근 들어 정책 기조 변화를 시사하고 있다. 과도한 거품 억제정책이 경제 성장을 되레 옥죄게 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12년 만에 집권에 성공한 노동당 정부가 중산층의 '모기지 스트레스'를 외면하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고금리 정책에 대한 관심이 단연 높다. 글렌 스티븐스 RBA 총재는 "수요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유도하는 통화 정책이 먹혀들어 경기 과열이 서서히 식고 있다"며 금리 인하를 시사했다. 9월 중 0.25%포인트가 인하될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임금상승 압박 요인인 만성적 인력부족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이민 수용규모를 대폭 늘리는 방안도 강구 중이다. 자원 달러를 투자로 연결시키려는 노력도 펼치고 있다. 호주 정부는 투자비용이 많다는 이유로 사업 추진이 더딘 석유광구 개발사업에 대해선 채굴권을 회수하겠다며 메이저 석유업체들을 압박하고 있다.
호주 정부 산하 기관인 오스트레이드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팀 해커트는 "금융ㆍ소매ㆍ여행 부문에서 가계 지출이 줄고 있지만 비교적 장기간 이뤄지는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가 많이 진행되고 있어 호주 경제 성장 전망은 여전히 밝다"고 낙관했다.
시드니= khpark@hankyung.com
호주의 회계연도는 7월에 시작해 다음 해 6월말에 끝나 대부분의 유통업체들은 상반기 실적과 전체 실적을 좋게 하기 위해 6월 말~7월 ,12월 말~1월 초 세일을 집중한다. 지금의 세일은 제철도 아닌데 이뤄지는‘폭탄 세일’인셈이다. ◆자원달러의 역설
세계 최대의 석탄 및 철광석 수출국으로 자원 달러가 넘쳐나는 호주에서 폭탄 세일이 등장한 이유는 뭘까.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원 달러다. 호주 경제는 4%대의 경제성장률을 지속해왔다. 중국 인도 등에서 자원 수요가 늘어 국제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자원부국 호주가 호황을 맞았다.
급속하게 불어난 자원달러가 임금과 물가 상승을 자극하자 호주 정부는 금리 인상으로 대응했다. 호주중앙은행(RBA)은 2005년 3월 5.5%였던 기준금리를 지난 3월 7.25%까지 높였다. 시중은행들은 대출 금리를 10% 안팎까지 올렸다. 호주에선 일반적으로 주택매입 자금의 80%가량을 모기지 론으로 충당한다.
대출금리 인상은 '모기지론 이자 증가→가계 가처분 소득 급감→소비지출 둔화→폭탄 세일→경제성장 둔화'라는 악순환 고리를 형성했다.
호주의 자원달러는 중동의 오일머니와 성격이 다르다. 중동 국가들은 오일머니를 도로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투입,경기를 부양할 수 있다. 하지만 호주의 자원달러는 BHP빌리톤,리오틴토,웨스트필드그룹 등 자원 기업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자원달러가 아무리 많더라도 호주 경제의 전반적인 투자로 이어지기 힘든 구조다.
지난 1분기 광산과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8.5% 늘어났지만 기계 및 설비투자는 1.5% 감소했고 주택건설 투자가 현상 유지에 그친 건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상황에서 풍부해진 유동성을 잡으려고 고금리 정책을 펴자 소비지출이 줄고 경제 전반이 영향을 받는 '자원달러의 역설'이 고개를 든 것이다. 호주 경제는 경기가 매우 좋은 에너지 산업과 매우 좋지 않은 일반 가계로 나뉘는 2중 속도(two speed) 상태라는 지적(스티븐 로버츠 리만브라더스 이코노미스트)도 나온다.
주요 기관들은 올해 호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다. IMF(국제통화기금)는 지난해 10월엔 3.8%로 예상했으나 지난 4월엔 3.2%로 낮췄다.
지난해 5월 3.3%로 예상했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지난 6월 2.7%로 수정해 발표했다. 웨스트팩ㆍ멜버른연구소는 최근 2.1%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중되는 모기지 스트레스
시드니 서부 외곽의 아파트 밀집지역인 웨스트 미드.중산층들이 주로 거주하는 이곳에는 토요일마다 진풍경이 펼쳐진다. 아파트 유리창과 도로 곳곳에 'For Sale'이란 문구와 연락처가 적혀 있는 안내판이 덕지 덕지 붙는다.
토요일을 이용해 집을 둘러보는 잠재 매수자들을 유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아파트 매물은 계속 나오고 있지만 매수세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인근 부동산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호주에선 임대료를 매주 단위로 내고 있어 주택 장만 욕구가 높다. 한번 집을 마련하면 장기 보유한다. 그럼에도 최근 들어 매물이 쏟아지는 것은 '모기지 스트레스'(주택구입자금 대출 이자부담) 때문이다.
호주의 한 연구기관 조사에 따르면 호주인들은 평균 45만달러짜리 주택을 소유하고 있고 모기지 론은 평균 34만달러가량으로 추정된다.
연 10%의 금리를 적용하면 이자만 3만4000달러에 달한다. 연봉 7만달러 직장인이라면 급여의 절반가량을 이자로 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모기지 스트레스는 호주 사회에 새로운 풍속도를 그리고 있다. 시드니 외곽의 청과물 도매시장인 플레밍턴 마켓은 토요일마다 인파로 붐빈다.
일주일에 한 번 일반인에게도 과일 야채 등을 도매가격 수준으로 팔기 때문이다. 기름값이 주중에 가장 낮은 화요일에는 주유소마다 기름을 넣으려는 자동차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적극 대응 나선 호주 정부
호주 정부는 최근 들어 정책 기조 변화를 시사하고 있다. 과도한 거품 억제정책이 경제 성장을 되레 옥죄게 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12년 만에 집권에 성공한 노동당 정부가 중산층의 '모기지 스트레스'를 외면하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고금리 정책에 대한 관심이 단연 높다. 글렌 스티븐스 RBA 총재는 "수요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유도하는 통화 정책이 먹혀들어 경기 과열이 서서히 식고 있다"며 금리 인하를 시사했다. 9월 중 0.25%포인트가 인하될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임금상승 압박 요인인 만성적 인력부족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이민 수용규모를 대폭 늘리는 방안도 강구 중이다. 자원 달러를 투자로 연결시키려는 노력도 펼치고 있다. 호주 정부는 투자비용이 많다는 이유로 사업 추진이 더딘 석유광구 개발사업에 대해선 채굴권을 회수하겠다며 메이저 석유업체들을 압박하고 있다.
호주 정부 산하 기관인 오스트레이드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팀 해커트는 "금융ㆍ소매ㆍ여행 부문에서 가계 지출이 줄고 있지만 비교적 장기간 이뤄지는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가 많이 진행되고 있어 호주 경제 성장 전망은 여전히 밝다"고 낙관했다.
시드니= kh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