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출신 발레리노 이렉 무하메도프(48·사진 남자주인공)는 무대 위에서 발레를 연기로 변신시키는 인물이다. 발레 '스파르타쿠스'에서는 애절한 몸짓으로,'이반대제'에서는 카리스마있는 눈빛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그는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과 영국 로열발레단에서 수석 무용수로 활동했고,케네스 맥밀란,조지 발란신 등 최고로 꼽히는 안무가들과도 함께 작업했다.

무하메도프가 국립오페라단의 트레이너로 내한했다. 그는 오는 21일까지 공연되는 국립발레단의 하반기 첫 작품 '지젤'의 주요배역 '지젤'과 '알브레히트''이르타'를 맡은 무용수 10명을 집중 지도하게 된다.

18일 예술의전당 안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한국 무용수들은 기술적인 면에서는 아주 뛰어나다"며 "특히 남자 단원들의 테크닉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국립발레단원들에게 캐릭터를 철저히 이해하라고 주문하는 그의 모습에서 연기력으로 승부하는 발레리노의 면모가 확연히 드러난다. 그는 "발레 안에서 이 상황이 왜 벌어졌는지 이해해야 하며,그 다음 무엇을 어떻게 표현해야하는지 생각해야 한다"면서 "춤 동작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해서 움직이도록 주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무용수가 재능있는지에 대한 판단도 마찬가지다. 재능과 기술적인 부분만으로는 발레를 제대로 해낼 수 없다는 것.그는 "발레를 예술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무대 위의 연기로 관객들에게 기억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김주원을 높게 평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김주원을 "큰 단점을 짚어낼 수 없을 만큼 훌륭한데다,드라마틱한 감정 표현을 강점으로 지닌 발레리나"라고 표현했다. 눈짓에서 손짓 하나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 긴장감을 갖고 연기에 집중한다는 것.

그가 휴가 중에도 국립발레단을 찾은 이유도 2000년 '세계 춤 2000 서울'에서 김주원과 공연했고,2006년 김주원이 '브누아 드 라 당스' 여성무용수상을 받을 당시 최태지 국립발레단장과 함께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인연 때문이다.

이번에 그가 지도하는 '지젤'은 로멘틱 발레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여러 면에서 1막과 2막이 대비되는 작품이다. 1막에서는 시골 아가씨 지젤이 시골 청년으로 가장한 귀족 알브레히트와 깊은 사랑에 빠졌다가 그의 신분을 알고 미쳐 춤추다 죽는다. 2막은 지젤이 깊은 밤 무덤에서 나와 숲을 찾아오는 젊은이에게 숨이 끊길 때까지 춤을 추게 하는 요정 '윌리'가 되지만,그를 찾아온 알브레히트만은 끝까지 지켜준다는 줄거리다.

1막은 극적인 연기력,2막은 높은 기술이 요구된다. 밝고 경쾌한 1막에 비해 2막은 어둡고 우울하다. 그래서 발레리나의 실력과 스타성을 가늠할 수 있는 작품으로 꼽힌다.

무하메도프가 지도한 '지젤'에서는 김주원,윤혜진,김리회가 번갈아 지젤을 연기한다. 23일 부산문화회관을 시작으로 11월2일 서울 충무아트홀 공연까지 전국 8개 도시를 돌며 순회공연을 이어간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