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빠,멋진 남편 또는 자상한 남자친구로 인정받기 위해선 유머러스하면서도 패셔너블해야 하며 동시에 고기까지 잘 구워야 하는 시대가 온 걸까? 대형마트 레저 코너에서 가장 잘 팔리는 품목 중 하나가 바비큐용 그릴일 정도로,가족 친구 혹은 지인들끼리 모여 소규모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여러 세대가 한 지붕 아래 살았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대부분 가정이 소수의 인원으로 구성돼 있어,각자 마음에 맞는 사람을 초대해 저녁을 함께 먹는 홈 파티가 일반화된 것 같아요. 서양처럼 우리나라에서도 특별한 날이나 연말에 모든 세대가 한집에 모여 파티를 즐기는 풍경이 흔해지지 않을까요. " 홈 파티 예찬자인 파티 플래너 지미 기는 홈 파티 트렌드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본격 휴가철이 지나고,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요즘이 야외에서 바비큐 파티를 즐길 수 있는 적기"라며 "참석자 간의 대화가 중요한 소규모 파티엔 빠르고 비트가 강한 곡보다는 잔잔한 음악으로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때 서울,특히 청담동의 파티문화는 브랜드의 마케팅 전략 일환으로 철저히 기획된 대형 파티 일색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드레스 코드라는 개념이 도입됐고,와인이나 데킬라 등이 파티용 주류로 각광받았으며 셀러브리티(유명인사)를 초청하는 것도 모자라 해외 유명 DJ들의 방한 러시가 이어졌다. 주말마다 '써클''앤서' 같은 강남의 주요 클럽 앞에는 삼삼오오 드레스 코드를 맞춘 파티 피플로 인산인해를 이뤘을 정도다.

하지만 몇몇 트렌드 세터들 사이에서 홈 파티가 인기를 끌자,대규모 파티 기획에만 골몰하던 마케터들도 친분 있는 사람들끼리의 소모임 위주 파티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지난 연말에 열린 뷰티 브랜드 'SK-Ⅱ'의 프라이빗한 파티는 이런 변화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배우 김희애,장진영,조민기와 디자이너 정구호,사진작가 김용호 등 소수의 사람들만 초대해 친목을 도모한 것.최근 스포츠 브랜드 푸마는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에 사무실을 새로 열면서 한쪽에 파티 공간을 만들어 친분이 있거나 거래처 사람들에게 공짜로 대여해 주고 있는데,당초 예상보다 훨씬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홈 파티의 유행은 건축 인테리어 판도도 바꿔 놓고 있다. 건축가 곽희수씨는 "예전에는 테라스를 없애고 거실을 확장하는 게 유행이었다면,요즘은 그 자리에 홈 바를 설치해 달라는 클라이언트들이 많아졌다"며 "상대적으로 홈 파티를 열기에 불리한 아파트에서는 단지별로 바비큐 파티 장소를 따로 마련하거나 1층 가구에 마당과 같은 개인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자신의 집에 지인들을 초대해 호스트가 되었을 경우 파티 스타일리스트 정유경씨의 노하우는 큰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결혼 피로연 같은 걸 준비할 때 메인 메뉴에 대해 가장 고민하게 마련이지만,대부분의 홈 파티는 게스트가 제각기 음식을 준비해오는 포트럭(pot luck) 파티 형식이기 때문에 큰 부담을 주진 않아요. 바비큐 파티일 경우라면 질 좋은 고기와 소스 정도만 준비하면 되죠.정작 중요한 건 이런 종류의 모임이 '초대'가 아니라 엄연한 '파티'라는 걸 자각하는 거예요. 파티용품점에서 구할 수 있는 장식물로 실내를 꾸며본다면 순식간에 분위기는 살아날 수 있답니다. 드레스 코드를 지정하거나 퀴즈나 게임을 준비해 게스트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도 호스트로서 파티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유용한 팁이므로 기억해 두세요. "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사람들은 가까운 지인들에게서 위안을 얻고자 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집에서 파티를 여는 건 다른 트렌드들처럼 삽시간에 타올랐다가 꺼져버리는 순간의 유행이 아니라,우리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드는 중요한 행사가 될 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남들보다 먼저 홈 파티 초대 명단을 작성해 보는 것은 어떨까.

/월간 '하퍼스 바자' 패션에디터 kimhyeonta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