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고유한 특성을 말할 때 우선 거론되는 것이 한(恨)이다. 그런데도 한을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나를 원망하는 것 같으면서도 꼭 그렇지는 않고,뉘우침이 있는가 하면 원망이 서려 있고,아쉬우면서도 처절한 아픔이 배어 있다. 이런 복합적인 감정은 도무지 외국어로 번역할 수 없는데,바꿔 말하면 한이 우리 특유의 감정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마음속의 응어리'와도 같은 한은 노래와 문학작품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 하는 '한오백년'이 그렇고,고려 말 송도의 선비들이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정선으로 들어가 자신들의 심경을 읊은 '정선아리랑'이 그렇다. '한 많은 미아리 고개'도 한이 절절히 넘친다. 한을 담은 고전과 작품은 우리 문학의 대종을 형성할 정도다.

이러한 한이 때로는 원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억울하고,답답하고,서러운 모든 것을 남에게로 돌리는 것이다. 진 것을 인정하지 않고,다만 운이 없고 재수가 없었을 뿐이라고 치부한다. 패배했을지언정 '너보다 부족하지 않다'는 심리가 기저에 깔려 있는 것이다. 패배는 곧 한으로 남아 복수만을 생각한다.

요즘 베이징 올림픽을 중계하는 진행자들이 '한'이라는 용어를 자주 쓰고 있다. '한을 풀었다''한을 풀기 위해 4년을 기다렸다'며 선수들의 강한 의지를 전달하곤 한다. 그들의 강한 자존심과 자부심을 '한'을 통해 우회적으로 표현하려 애쓰는 기색도 역력하다. 그러다 보니 선수들이 자칫 전투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분노와 같은 극단적인 용어라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한'은 '뉘우친다'는 뜻이 있듯이 오히려 자신을 향한 따뜻한 정감이다. 이 따뜻한 정감이 무너질 때 한이 생기고,반대의 경우엔 신명이 나는 법이다. 매일 메달의 낭보를 전하는 우리 선수들은 각 종목에서 그야말로 신명나게 올림픽을 준비해 왔다.

한도 그렇지만 신명 또한 우리 민족의 또 다른 고유한 특성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