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물은 사람을 안 죽여도 악성 게시글은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 지난 8일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을 찾은 직장인 A씨는 인터넷 포털을 향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당초 이 자리는 인터넷 실명제(본인 확인제)를 확대하기에 앞서 전문가 및 일반 시민들의 견해를 듣기 위한 공청회였지만,포털 게시글로 피해를 입은 이들의 하소연장으로 바뀌었다.

공청회의 시작은 순탄했다. 정부,학계,인터넷 업계에서 참여한 8명의 패널들은 "개인 정보 보안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등의 보완책 정도만 주문했을 뿐,하루 평균 이용자수 10만명 이상의 웹 사이트로 본인 확인제를 확대하는 데 공감했다. 그대로 마무리되는가 싶더니 질의 시간이 되자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A씨는 "가해자가 소송 중인 재판 판결문까지 인터넷에 올렸는데도 포털은 이를 삭제하려면 다시 소송을 해 판결문을 가져오라 한다"고 하소연했다. 가정 주부 B씨는 "가해자가 형사 소송에서 70만원의 벌금형을 받는 등 피해가 명백한데도 포털이 게시글을 지워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의 말이 어찌나 절절했던지 사회를 맡은 박정호 선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패널로 참석한 정경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이 변호사도 겸직하고 있으니 공청회 끝나면 꼭 상담을 받으시라"고 권했다.

공청회를 보고 있자니 답답함이 가슴을 메웠다. 피해자는 속출하는데 책임질 사람은 찾기 어려운 현실이 안타까웠다. 대리인(인터넷기업협회)만 나왔을 뿐 참석 요청에도 불구하고 공청회 자리에 포털 당사자 한 명이 없다는 것도 아쉬웠다. 나현준 방통위 네트워크윤리팀장은 "멋진 놀이 시설을 만들어 놓았으니 마음껏 뛰어 놀되,사고가 나면 당사자들끼리 해결하라는 식"이라고 포털을 비판했다.

포털들은 음란물은 삭제해도 명예훼손은 피해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워 임의로 개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법대로 하고 있으니 문제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기준의 모호함을 주장하기에 앞서 포털들은 '개인의 권리침해를 막기 위해 게시글을 관리한다'는 이용약관을 성실하게 이행했는지 되짚어 볼 일이다.

박동휘 산업부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