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인터뷰] 하안거(夏安居) 해제 앞둔 덕숭총림 首座설정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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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가파른 산길을 차로 올라가 마지막 계단 몇 개를 오르는 새 땀이 송글송글하다. 그래서 스님에게 대뜸 더위를 이길 수 있는 지혜부터 물었다. "영화에 푹 빠지거나 연애에 몰입할 땐 춥거나 더운 것에 연연하지 않지요? 덥다,덥다 하면 더 덥지만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리면 덥지 않습니다. 정좌법(正坐法)으로 마음을 식혀 보세요. 더위나 추위 같은 바깥의 경계는 내 마음에 머무르지 않고 그냥 지나가 버립니다. "충남 예산의 덕숭총림 수덕사가 기대고 있는 덕숭산 정상(해발 495.2m) 부근의 정혜사 능인선원.산 아래에는 피서지로 향하는 차량이 꼬리를 물지만 산 위 선방에는 고요만이 감돈다. 산중의 선방이라고 무더위가 피해 갈 리 없으련만 오전 정진을 마친 선객들의 얼굴은 그저 무심하다. 화두 하나에 의지한 채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선방은 부처를 뽑는 선불장(選佛場).관심이 오로지 거기에만 가 있으니 더위는 안중에도 없다. 여름 석 달간 집중적으로 수행하는 하안거(夏安居) 해제(끝맺음)를 일주일 앞둔 주말.이 선불장을 이끌고 있는 덕숭총림 수좌(首座) 설정 스님(雪靖·68)은 구릿빛으로 그을린 얼굴에 수염이 희끗희끗하다. 수좌란 총림의 최고 어른인 방장을 대신해 선을 지도할 수 있는 직책.덕숭총림 방장이던 원담 스님이 지난 3월 입적한 뒤로는 설정 스님이 총림을 이끌고 있다. 선사에게 여름을 청량하게 지낼 수 있는 지혜를 구했다.
-무더위가 한창입니다.
"수도자에겐 춥고 더움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해탈법을 성취할까 간절히 생각하면 더위나 추위,배고픔 따위는 문제되지 않으니까요. 이 공부에 익숙해지면 더위나 추위는 별로 안 느끼고 살 수 있어요. "
-건강은 어떠신지요.
"늘 대중들과,특히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사람들과 함께 수행하니 즐겁고 좋습니다. 정좌법으로 정진하는 것은 육체와 정신의 병을 함께 치료하고 예방하는 최상의 방법입니다. 바른 자세로 호흡을 조절하면 몸의 잘못된 것과 잡다한 탁기(濁氣)를 내보내게 돼 혈액 순환에도 좋고 오장육부를 다스리는 데에도 좋아요. 정신이 산란해서 오는 치매를 막는 데에도 최선의 방법이고요. "
좌선은 깨달음을 위한 수행 방편으로서뿐만 아니라 몸을 위해서도 여러 모로 좋은 것이라고 설정 스님은 설명했다. 직업과 종교에 관계 없이 격무와 복잡다기한 상황으로 인해 감당하기 힘든 갈등과 정신적 혼란을 겪는 현대인은 하루 한 시간,아니 30분만이라도 정좌법으로 쉬어 주면 다음 일을 하는 데 큰 활력을 저축하게 된다는 것이다. 설정 스님은 "현대인은 휴식을 모르고 끝없이 앞으로만 가려다 격정적 갈등을 이기지 못한 채 좌절하고 정신적 혼란을 초래한다"며 "쉬고 비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휴가철인데 제대로 휴식하는 방법은 뭡니까.
"몸뚱이를 쉰다고 쉬는 것은 아니지요. 육체적 휴식은 잠깐 뿐,마음을 쉬면서 육체도 쉬도록 하는 게 진정한 휴식이에요. 휴가는 다음 생활을 준비하는 에너지 보충 기간인데 잘못 보내면 휴가가 도리어 정신과 육체의 병을 만드는 경우도 많습니다. 남들이 가니까 나도 따라 나서는 것은 문제가 있지요. 고속도로에 몰린 차량 때문에 길에서 시간을 다 보내고 사람에 치이다 보면 휴식이 아니라 오히려 혼란만 가중되니까요. 정신적으로 보탬이 되는 휴가 문화가 필요해요. "
―선방 분위기는 어떤가요.
"올 여름 덕숭산에는 비구·비구니를 합쳐서 85명이 안거 중인데 여기 정혜사에서는 25명이 수행 중입니다. 정혜사 안거 대중은 대부분 선방에 오래 다닌 분들이라 자기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하므로 누가 지적하고 경책할 필요가 없어요. 신참이라 해도 선방 경력이 10년 가까운 분들이니 스스로 탁마할 따름입니다. "
-덕숭총림 선사들이 남긴 덕숭 가풍이란 어떤 것입니까.
"덕숭 가풍의 핵심은 무상(無相) 무념(無念) 무주(無住)에 철저한 것입니다. 차별이나 집착이 없이 공부하고 중생을 구제하며,공부할 때에도 차별경계를 두지 않고 번뇌망상을 떨쳐 버리는 것이죠.도(道)에 집착하지 않고 오욕(五慾)에도 물들지 않는 삶이 바로 덕숭 가풍입니다. "
-그런 가풍의 실례를 하나 들어 주시지요.
"덕숭산에서는 다른 산중과 달리 선사들이 열반에 들었을 때 다비(화장)를 한 뒤 사리를 수습하지 않습니다. 사리를 수습하거나 부도를 세우는 자는 마구니의 권속이라며 만공 스님이 엄명을 내리셨거든요. 이 산중에서 수월·혜월·만공·고봉·혜암·벽초·원담 등 많은 선지식이 출현했음에도 덕숭산에 사리탑이 없는 것은 이런 까닭입니다. 덕숭 가풍의 또 다른 모습은 철저히 고졸한 신념입니다. 길 위에서 살지언정 명예나 재물 따위를 위해 살지 않습니다. 일제 강점시대 지독한 불교 탄압 속에서도 한국 불교의 정체성을 지키려 선학원을 설립했고,왜인들의 창씨개명 강요에도 만공 스님의 제자들은 한 명도 개명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불교의 순수성,스님으로서의 본분을 지키려고 피나게 노력한 것이 덕숭 가풍입니다. "
-지금 불교계에서는 종교 편향 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산중에는 신문이나 텔레비전이 없어 뉴스를 들을 수 없지만 찾아오는 사람들이 전해 주는 소식은 듣습니다. 정부의 종교적 편향이 도를 넘어서고 있는데 책임 있는 사람들이 그 심각성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기독교인만 있으면 나라가 잘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잘못입니다. 하늘의 달과 해는 삿되게 비추지 않고 땅은 만물을 삿되게 싣지 않습니다. 통치자도 그런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
-지금 우리나라는 고물가,경기 침체,남북관계 경색,촛불 시위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국가적 난제를 안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라가 어려울 땐 국민이 단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안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신뢰가 깨졌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국민의 뜻을 받들어 신뢰 회복의 기간을 가져야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잘못하려고 하지는 않았겠지만 너무 급하게 서두르다 처음부터 꼬였습니다. 국민 감정을 무시한 게 촛불 집회의 도화선이 됐고 그 뒤로도 국민을 진심으로 설득하지 못했어요. 지금이라도 힘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부풀었던 국민 감정을 삭여야 해요.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는 부양책·개선책보다 국민 감정을 추스르는 것이 먼저입니다. "
-국민 모두가 마음과 지혜를 모아야겠군요.
"불교는 신앙의 종교가 아니라 실천의 종교입니다. 천사불여일행(千思不如一行)이라,1000번 생각하는 것이 한 번 실천하는 것만 못합니다. 그래서 불교는 실제로 수행하고 실천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면 스스로를 지킬 뿐만 아니라 남도 돕게 되니 갈등과 시비가 있을 수 없고 이 세계가 그대로 불국토가 됩니다. 심외무불(心外無佛) 불외무심(佛外無心)이라,마음 밖에 따로 부처가 없고 부처 밖에 따로 마음이 있지 않으니 마음 속의 그 부처,그 신령한 것을 다 버리고 살면 평생 중생 노릇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
설정 스님은 온화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수행과 실천을 거듭 강조했다. 그래야 스스로 자기의 주인으로,우주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다며 "여러분도 해 보라"고 했다. 이야기를 마친 스님은 오후 정진을 위해 선방으로 들어갔다.
수덕사(예산)=글/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사진/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무더위가 한창입니다.
"수도자에겐 춥고 더움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해탈법을 성취할까 간절히 생각하면 더위나 추위,배고픔 따위는 문제되지 않으니까요. 이 공부에 익숙해지면 더위나 추위는 별로 안 느끼고 살 수 있어요. "
-건강은 어떠신지요.
"늘 대중들과,특히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사람들과 함께 수행하니 즐겁고 좋습니다. 정좌법으로 정진하는 것은 육체와 정신의 병을 함께 치료하고 예방하는 최상의 방법입니다. 바른 자세로 호흡을 조절하면 몸의 잘못된 것과 잡다한 탁기(濁氣)를 내보내게 돼 혈액 순환에도 좋고 오장육부를 다스리는 데에도 좋아요. 정신이 산란해서 오는 치매를 막는 데에도 최선의 방법이고요. "
좌선은 깨달음을 위한 수행 방편으로서뿐만 아니라 몸을 위해서도 여러 모로 좋은 것이라고 설정 스님은 설명했다. 직업과 종교에 관계 없이 격무와 복잡다기한 상황으로 인해 감당하기 힘든 갈등과 정신적 혼란을 겪는 현대인은 하루 한 시간,아니 30분만이라도 정좌법으로 쉬어 주면 다음 일을 하는 데 큰 활력을 저축하게 된다는 것이다. 설정 스님은 "현대인은 휴식을 모르고 끝없이 앞으로만 가려다 격정적 갈등을 이기지 못한 채 좌절하고 정신적 혼란을 초래한다"며 "쉬고 비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휴가철인데 제대로 휴식하는 방법은 뭡니까.
"몸뚱이를 쉰다고 쉬는 것은 아니지요. 육체적 휴식은 잠깐 뿐,마음을 쉬면서 육체도 쉬도록 하는 게 진정한 휴식이에요. 휴가는 다음 생활을 준비하는 에너지 보충 기간인데 잘못 보내면 휴가가 도리어 정신과 육체의 병을 만드는 경우도 많습니다. 남들이 가니까 나도 따라 나서는 것은 문제가 있지요. 고속도로에 몰린 차량 때문에 길에서 시간을 다 보내고 사람에 치이다 보면 휴식이 아니라 오히려 혼란만 가중되니까요. 정신적으로 보탬이 되는 휴가 문화가 필요해요. "
―선방 분위기는 어떤가요.
"올 여름 덕숭산에는 비구·비구니를 합쳐서 85명이 안거 중인데 여기 정혜사에서는 25명이 수행 중입니다. 정혜사 안거 대중은 대부분 선방에 오래 다닌 분들이라 자기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하므로 누가 지적하고 경책할 필요가 없어요. 신참이라 해도 선방 경력이 10년 가까운 분들이니 스스로 탁마할 따름입니다. "
-덕숭총림 선사들이 남긴 덕숭 가풍이란 어떤 것입니까.
"덕숭 가풍의 핵심은 무상(無相) 무념(無念) 무주(無住)에 철저한 것입니다. 차별이나 집착이 없이 공부하고 중생을 구제하며,공부할 때에도 차별경계를 두지 않고 번뇌망상을 떨쳐 버리는 것이죠.도(道)에 집착하지 않고 오욕(五慾)에도 물들지 않는 삶이 바로 덕숭 가풍입니다. "
-그런 가풍의 실례를 하나 들어 주시지요.
"덕숭산에서는 다른 산중과 달리 선사들이 열반에 들었을 때 다비(화장)를 한 뒤 사리를 수습하지 않습니다. 사리를 수습하거나 부도를 세우는 자는 마구니의 권속이라며 만공 스님이 엄명을 내리셨거든요. 이 산중에서 수월·혜월·만공·고봉·혜암·벽초·원담 등 많은 선지식이 출현했음에도 덕숭산에 사리탑이 없는 것은 이런 까닭입니다. 덕숭 가풍의 또 다른 모습은 철저히 고졸한 신념입니다. 길 위에서 살지언정 명예나 재물 따위를 위해 살지 않습니다. 일제 강점시대 지독한 불교 탄압 속에서도 한국 불교의 정체성을 지키려 선학원을 설립했고,왜인들의 창씨개명 강요에도 만공 스님의 제자들은 한 명도 개명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불교의 순수성,스님으로서의 본분을 지키려고 피나게 노력한 것이 덕숭 가풍입니다. "
-지금 불교계에서는 종교 편향 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산중에는 신문이나 텔레비전이 없어 뉴스를 들을 수 없지만 찾아오는 사람들이 전해 주는 소식은 듣습니다. 정부의 종교적 편향이 도를 넘어서고 있는데 책임 있는 사람들이 그 심각성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기독교인만 있으면 나라가 잘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잘못입니다. 하늘의 달과 해는 삿되게 비추지 않고 땅은 만물을 삿되게 싣지 않습니다. 통치자도 그런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
-지금 우리나라는 고물가,경기 침체,남북관계 경색,촛불 시위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국가적 난제를 안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라가 어려울 땐 국민이 단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안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신뢰가 깨졌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국민의 뜻을 받들어 신뢰 회복의 기간을 가져야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잘못하려고 하지는 않았겠지만 너무 급하게 서두르다 처음부터 꼬였습니다. 국민 감정을 무시한 게 촛불 집회의 도화선이 됐고 그 뒤로도 국민을 진심으로 설득하지 못했어요. 지금이라도 힘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부풀었던 국민 감정을 삭여야 해요.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는 부양책·개선책보다 국민 감정을 추스르는 것이 먼저입니다. "
-국민 모두가 마음과 지혜를 모아야겠군요.
"불교는 신앙의 종교가 아니라 실천의 종교입니다. 천사불여일행(千思不如一行)이라,1000번 생각하는 것이 한 번 실천하는 것만 못합니다. 그래서 불교는 실제로 수행하고 실천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면 스스로를 지킬 뿐만 아니라 남도 돕게 되니 갈등과 시비가 있을 수 없고 이 세계가 그대로 불국토가 됩니다. 심외무불(心外無佛) 불외무심(佛外無心)이라,마음 밖에 따로 부처가 없고 부처 밖에 따로 마음이 있지 않으니 마음 속의 그 부처,그 신령한 것을 다 버리고 살면 평생 중생 노릇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
설정 스님은 온화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수행과 실천을 거듭 강조했다. 그래야 스스로 자기의 주인으로,우주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다며 "여러분도 해 보라"고 했다. 이야기를 마친 스님은 오후 정진을 위해 선방으로 들어갔다.
수덕사(예산)=글/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사진/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