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학생 음악캠프 지휘 맡은 정명훈 씨

지휘자 정명훈씨(55·사진)는 "60세가 되면 이 일을 그만하겠다"고 자주 말한다. 음악을 그만두겠다는 뜻이 아니다. 지휘자의 경력을 위한 일이 아니라,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뜻있는 연주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올해로 네 번째를 맞는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아카데미'(APOA)의 음악캠프도 이 같은 정씨의 의지와 무관하지 않다. 인천시의 후원을 받아 정씨가 직접 기획한 이 아카데미는 해외에 유학 중인 한국 일본 중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 출신 학생 94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그가 섭외한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 등으로부터 음악 교육을 받은 뒤 매년 특별콘서트 무대에 함께 선다. 올해도 8일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을 콘서트 형식으로 연주한다.

7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정씨를 만났다. 그는 학생들과 막바지 리허설에 열중하고 있었다. 인터뷰 시간도 학생들과 함께 쉬는 틈을 타 겨우 낼 수 있었다.

정씨는 "학생들이 이런 교육을 통해 '밸런스(balance)'를 배워가면 좋겠다"고 운을 뗐다. '밸런스'는 정씨가 인터뷰 자리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다. 음악과 삶,오케스트라 단원 간의 관계 등 다양한 뜻으로 사용한다. 이 자리에서는 학생들이 음악을 대할 때 직업적인 전문성과 음악인으로서 가져야 할 애정 사이의 균형을 뜻했다. 그의 교육관은 확실하지만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강요하진 않는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때도 마찬가지다. 지휘자로서 큰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결국 관객들과의 접점에서 음악을 표현하는 것은 연주자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따라가는 사람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훌륭한 선생보다 훌륭한 제자가 더 드뭅니다. 학생의 선택 능력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그릇의 크기에 따라 좋은 연주자의 여부가 결정되는 겁니다. "

정씨의 가치관은 그의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그의 어머니 이원숙씨는 함경남도 원산 태생으로 이화여전 가사과를 졸업한 뒤 명동에서 '고려정'이라는 음식점을 경영하면서 자녀들을 교육시켰다. 정씨를 비롯해 정명화(첼리스트),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모두 세계적인 음악가로 성장했지만 어머니가 음악을 강요한 적은 없다.

"어머니는 아이들의 작은 재능을 발견한 뒤 우리가 원하는 대로 도와주셨을 뿐이에요. 나머지는 각자가 알아서 능력을 끄집어낸 것이죠."

그는 음악조차 주입식 교육방법으로 가르치는 국내의 현실도 꼬집었다. "사람마다 마음 속에 자신만의 소리를 갖고 있고,그것을 이끌어낼 때 자기만의 입지를 세울 수 있지요. 한국에서도 학생들에게 그것을 끄집어낼 수 있는 여유를 줘야 합니다. "

정씨는 이번 공연 외에도 오는 12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과 13일 고양 아람누리 극장에서 서울시향의 지휘봉을 잡는다. 거장들의 음악을 선별해서 연주하는 '마스터피스 시리즈'의 다섯 번째 무대로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프랑크 페터 침머만과의 협연이 기대된다. 오는 26일에는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서 '부산 소년의 집 관현악단(BSO)'과 함께 자선음악회를 연다. 그는 아들 정민씨의 지휘 아래 누나 정명화씨와 함께 피아니스트로서 무대에 설 예정이다.

글=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사진=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