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60년…도전의 순간들] (4) 방동식 前경부고속도로 기획담당관 “그때 난 미친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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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난 미친 사람이었죠." 30여년 전 경부고속도로 건설공사사무소 기획담당관(77ㆍ당시 육군소령)으로 일했던 방동식씨는 6일 이렇게 회고했다. 1967년 공병 장교로 근무 중이던 방 소령은 건설부 산하 임시조직인 건설공사사무소로 차출됐다. 박정희 대통령이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총동원령을 내리다시피한 상황에서 공병 특기인 방 소령이 뽑힌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방 소령은 그곳에서 노선선정ㆍ공정관리ㆍ상황보고ㆍ업무감독 등 공정 전반에 걸쳐 지휘,총괄하는 일을 맡았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이라고 하면 안 되는 게 없었거든요. 모든 게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습니다. "
하루는 시멘트 수송이 늦어져 공사에 차질이 생기자 그는 시멘트가 있는 역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청와대 방 소령입니다. 시멘트가 XX일까지 도착돼야 하니 출발시간과 화차번호를 속히 알려주시죠.' 청와대를 사칭(?)한 전화 한 방에 역장은 즉각 수송 중이던 무ㆍ배추를 내려놓은 뒤 시멘트를 실어 현장으로 보냈다. 이 같은 일은 곳곳에서 벌어졌다. 방 소령은 무엇보다 박 대통령과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의 열정적인 리더십이 없었다면 지금의 경부고속도로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박 대통령은 5만분의 1 지도에다가 서울부터 부산까지 연필로 노선을 직접 그려가며 일일이 지시를 했죠.지형과 높낮이에 따라 노선을 설계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죠."
정 회장과의 첫 만남도 인상 깊게 남았다. 안보상의 이유로 기존 철도와 국도를 피해야 했던 추풍령 통과 노선이 설계상 어려움을 겪자 해결책을 고안한 정 회장이 대통령에게 직접 브리핑하던 자리였다. 방 소령은 이때 자신감에 찬 정 회장의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박 대통령과 정 회장은 수시로 현장에 나가 고생하는 직원들을 다독이곤 했다.
"박 대통령은 절대 현장에 그냥 오는 법이 없었어요. 항상 점퍼나 격려금 같은 선물을 가져와서 직원들의 사기를 높여주곤 했죠.이런 것들이 사람들을 미치도록 일하게 한 힘이 됐습니다. "
428㎞를 2년 반 만에 준공하는 기적을 일궈낸 건설공사사무소는 해체 후 한국도로공사로 재탄생했다. 전국 각지에서 차출돼 고락을 함께한 동료 600여명은 현업에 복귀하는 아쉬움을 달래려 친목 모임을 만들었다. 준공일인 1970년 7월7일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이름도 '7ㆍ7회'로 지었다. 방 소령은 그때 간사를 맡아 지금까지 회장직을 맡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신나게 뛰었고 후회없이 일했습니다. 비록 후대가 우리의 공을 모른다 해도 아쉬움은 없습니다. "
글=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사진=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방 소령은 그곳에서 노선선정ㆍ공정관리ㆍ상황보고ㆍ업무감독 등 공정 전반에 걸쳐 지휘,총괄하는 일을 맡았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이라고 하면 안 되는 게 없었거든요. 모든 게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습니다. "
하루는 시멘트 수송이 늦어져 공사에 차질이 생기자 그는 시멘트가 있는 역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청와대 방 소령입니다. 시멘트가 XX일까지 도착돼야 하니 출발시간과 화차번호를 속히 알려주시죠.' 청와대를 사칭(?)한 전화 한 방에 역장은 즉각 수송 중이던 무ㆍ배추를 내려놓은 뒤 시멘트를 실어 현장으로 보냈다. 이 같은 일은 곳곳에서 벌어졌다. 방 소령은 무엇보다 박 대통령과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의 열정적인 리더십이 없었다면 지금의 경부고속도로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박 대통령은 5만분의 1 지도에다가 서울부터 부산까지 연필로 노선을 직접 그려가며 일일이 지시를 했죠.지형과 높낮이에 따라 노선을 설계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죠."
정 회장과의 첫 만남도 인상 깊게 남았다. 안보상의 이유로 기존 철도와 국도를 피해야 했던 추풍령 통과 노선이 설계상 어려움을 겪자 해결책을 고안한 정 회장이 대통령에게 직접 브리핑하던 자리였다. 방 소령은 이때 자신감에 찬 정 회장의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박 대통령과 정 회장은 수시로 현장에 나가 고생하는 직원들을 다독이곤 했다.
"박 대통령은 절대 현장에 그냥 오는 법이 없었어요. 항상 점퍼나 격려금 같은 선물을 가져와서 직원들의 사기를 높여주곤 했죠.이런 것들이 사람들을 미치도록 일하게 한 힘이 됐습니다. "
428㎞를 2년 반 만에 준공하는 기적을 일궈낸 건설공사사무소는 해체 후 한국도로공사로 재탄생했다. 전국 각지에서 차출돼 고락을 함께한 동료 600여명은 현업에 복귀하는 아쉬움을 달래려 친목 모임을 만들었다. 준공일인 1970년 7월7일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이름도 '7ㆍ7회'로 지었다. 방 소령은 그때 간사를 맡아 지금까지 회장직을 맡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신나게 뛰었고 후회없이 일했습니다. 비록 후대가 우리의 공을 모른다 해도 아쉬움은 없습니다. "
글=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사진=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