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27일 "카드를 다 보여주는 식의 협상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당초 취임일성으로 내놨던 "카드를 다 보여주고 선택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협상해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삼겠다"는 홍준표식 협상스타일을 두 달여 만에 포기한 것이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개원협상할 때도 그렇고 최근 원구성 협상에서도 카드를 다 꺼내놓으니 민주당이 꺼내놓은 카드는 기정사실로 하고 더 내놓으라는 억지를 쓴다"며 "앞으로는 옛날처럼 조금씩 조금씩 카드를 내놓는 협상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 일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통큰 정치'를 고수해왔지만 자신의 의도가 '악용'되고 국회 파행이 장기화되자 정치 실험의 실패를 자인한 셈이다.

실제 홍 원내대표는 지난 5월22일 취임 이후 여당의 패를 다 꺼내놓고 야당의 요구와 절충하는 협상 스타일을 고수해왔다. 국내법으로 국제법을 제한한다는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등원 조건으로 내건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대한 특위 구성에 합의했고 미국산 쇠고기 협상에 대한 국정조사도 받아들였다. 당시(7월2일)까지만 해도 그는 '패를 다 보여주는 협상 스타일이 한계를 드러낸 게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다고 음흉하게 협상하진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했었다.

하지만 "민주당의 억지(홍 원내대표)"로 원구성 협상마저 지연되자 자세를 고쳐 앉았다. "예를 들어 방송통신위원회는 당초 문광위에서 가져가기로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와 합의했는데 이제 와서 민주당이 별도 위원회를 두자며 뒤집었고 국정조사 증인 채택도 MBC PD수첩은 절대 안 된다고 억지를 쓴다"는 주장이다. 그는 "금주 안에 원구성 문제에 대해 원 원내대표와 1 대 1 담판을 벌이고 합의가 안 되면 무기명 투표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81석 가진 당이 국회를 전부 움직이려 하면 안 된다"고 민주당을 비난했다.

통큰 협상으로 대표되는 정치 실험의 좌절에도 불구하고 당내 '군기반장' 및 '청와대와의 소통역'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청와대와 내각이 힘을 쓰지 못하는 국정공백 상태에서 당내의 중구난방 목소리를 잠재우고 악화된 여론을 달래가며 비교적 무난하게 당을 이끌었다는 데 별 이견이 없다. 계파에서 자유로우면서도 힘있는 목소리를 내는 특유의 스타일이 힘을 발휘했다는 분석이다.

지난 4일 새 대표가 뽑히고 2기 청와대도 자리를 잡아가면서 그는 "더 이상 총대를 메지 않고 원내 일에만 집중하겠다"고 말했지만 당내에서의 역할이 줄어들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북특사 파견 문제를 놓고 당청 간 불협화음이 일자 당대표와 청와대 간 주례회동의 필요성을 강력히 제기,관철시킨 게 대표적이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