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의 세상 뒤쪽 슬픔을 껴안다...문태준씨 새시집 '그늘의 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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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씨(38·사진)는 문명의 이기와 폭력에 짓눌린 개인의 상처를 드러내기에 몰두하는 요즘 젊은 시인들의 흐름과는 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일탈 자체를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서정시의 전통과 문법을 존중한다. 하지만 그의 시는 정통 서정시보다는 훨씬 현대적이어서 '서정시 가문의 적자'로 불리기도 한다.
문씨가 네번째 시집 ≪그늘의 발달≫(문학과지성사)을 내놨다. 71편의 시가 담긴 이번 시집에서 그는 소박한 일상 세계 안에서도 시인의 섬세한 촉수를 세운다. 겉으로는 일상의 풍경을 이야기하지만 이면에는 살아가면서 느끼는 소소한 감정들을 넘치지 않을 정도로 드러낸다.
표제작 <그늘의 발달>은 시인의 아버지가 고향 집의 감나무를 베는 것을 보며 쓴 시다. 여기서 감나무의 '그늘'은 '눈물'과 같은 의미다. 문씨는 삶의 가져다 주는 슬픔을 외면하기보다는 끌어안으려고 한다.
'아버지여,감나무를 베지 마오/ 감나무가 너무 웃자라/ 감나무 그늘이 지붕을 덮는다고/ 감나무를 베는 아버지여/ 그늘이 지붕이 되면 어떤가요/ 눈물을 감출 수는 없어요. '(<그늘의 발달> 중)
'조촘조촘''끔벅끔벅' 등 의성어와 의태어들을 통해 숨을 고르면서도 표현의 부드러움을 더하는 것도 그만의 특징이다. 이런 표현들은 메시지를 넌지시 감추는 역할도 해 시의 분위기를 세련되게 만든다. 시 <화분>에서는 사랑의 모습을 '화분'을 통해 달관적인 태도로 그렸다.
'사랑의 농원에 대하여/ 생각하였느니// 나는 나로부터 변심하는 애인// 나의 하루와 노동은/ 죽은 화분에 물을 부어주었느니(중략) 수심(愁心)을 들고 바람 속에 흔들리거나/ 내가 돌아앉으면/ 눈물을 달고 어룽어룽 내 뒤에 서 있었어라.'(<화분> 중)
그가 아름다운 언어들을 이용하지만 사실은 무서울 만큼 냉혹한 현실을 노래하는 부분에서는 의뭉스럽게 보이기까지 한다. 그는 희망찬 미래를 제시하기보다는 비굴하게 보일지라도 무탈히 현실을 살아내는 삶도 있음을 보여준다.
'배를 깔고 턱을 땅에 대고 한껏 졸고 있는 한 마리 개처럼/ 이 세계의 정오를 지나가요/ 나의 꿈은 근심 없이 햇빛의 바닥을 기어가요/ 목에 쇠사슬이 묶인 줄을 잊고/ 쇠사슬도 느슨하게 정오를 지나가요. '(<엎드린 개처럼> 중)
문학평론가 김주연씨 "문태준의 시 바구니 안에는 속도의 세상 뒤 쪽에서 서서히 그 세상의 운행을 관찰하고 언어를 절제하면서,느리게 볼 때에만 보이는 본질을 슬며시 잡아내어 드러낸다"고 평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문씨가 네번째 시집 ≪그늘의 발달≫(문학과지성사)을 내놨다. 71편의 시가 담긴 이번 시집에서 그는 소박한 일상 세계 안에서도 시인의 섬세한 촉수를 세운다. 겉으로는 일상의 풍경을 이야기하지만 이면에는 살아가면서 느끼는 소소한 감정들을 넘치지 않을 정도로 드러낸다.
표제작 <그늘의 발달>은 시인의 아버지가 고향 집의 감나무를 베는 것을 보며 쓴 시다. 여기서 감나무의 '그늘'은 '눈물'과 같은 의미다. 문씨는 삶의 가져다 주는 슬픔을 외면하기보다는 끌어안으려고 한다.
'아버지여,감나무를 베지 마오/ 감나무가 너무 웃자라/ 감나무 그늘이 지붕을 덮는다고/ 감나무를 베는 아버지여/ 그늘이 지붕이 되면 어떤가요/ 눈물을 감출 수는 없어요. '(<그늘의 발달> 중)
'조촘조촘''끔벅끔벅' 등 의성어와 의태어들을 통해 숨을 고르면서도 표현의 부드러움을 더하는 것도 그만의 특징이다. 이런 표현들은 메시지를 넌지시 감추는 역할도 해 시의 분위기를 세련되게 만든다. 시 <화분>에서는 사랑의 모습을 '화분'을 통해 달관적인 태도로 그렸다.
'사랑의 농원에 대하여/ 생각하였느니// 나는 나로부터 변심하는 애인// 나의 하루와 노동은/ 죽은 화분에 물을 부어주었느니(중략) 수심(愁心)을 들고 바람 속에 흔들리거나/ 내가 돌아앉으면/ 눈물을 달고 어룽어룽 내 뒤에 서 있었어라.'(<화분> 중)
그가 아름다운 언어들을 이용하지만 사실은 무서울 만큼 냉혹한 현실을 노래하는 부분에서는 의뭉스럽게 보이기까지 한다. 그는 희망찬 미래를 제시하기보다는 비굴하게 보일지라도 무탈히 현실을 살아내는 삶도 있음을 보여준다.
'배를 깔고 턱을 땅에 대고 한껏 졸고 있는 한 마리 개처럼/ 이 세계의 정오를 지나가요/ 나의 꿈은 근심 없이 햇빛의 바닥을 기어가요/ 목에 쇠사슬이 묶인 줄을 잊고/ 쇠사슬도 느슨하게 정오를 지나가요. '(<엎드린 개처럼> 중)
문학평론가 김주연씨 "문태준의 시 바구니 안에는 속도의 세상 뒤 쪽에서 서서히 그 세상의 운행을 관찰하고 언어를 절제하면서,느리게 볼 때에만 보이는 본질을 슬며시 잡아내어 드러낸다"고 평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