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리으리한 호프집 말고라도 구멍가게 앞이나 치킨집 마당에서 슬리퍼 끌고 나와 맥주파티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큰 돈 안 들이고 좋은 사람들과 시끄럽게 떠들며 스트레스를 날리기에는 딱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우리나라 성인 남성의 72%,성인 여성의 32.3%가 매일 조금이라도 술을 마신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네 술 마시는 풍경은 '첫 잔은 원샷'이라는 불문율에다 시계 방향으로 컵을 돌리는 파도타기,실컷 마시고 나서 혀 꼬인 소리로 술 깨고 가야 한다며 노래방에 들어가서 또 캔맥주를 들이켜기 일쑤다. 그리고도 귀신같이 집은 잘 찾아가는데 그 다음은 어떤가?
"술만 마시면 달려드는 남편 때문에 미치겠어요. 기분 좋게 마셨으면 얌전하게 발 닦고 자면 좋을 텐데 자는 사람 깨워서 청국장 뜨는 냄새 풀풀 풍기며 덤비니….맨 정신일 때는 전혀 가까이 오지도 않는 사람이 술만 들어갔다 하면 완전 자동 섹스머신이니 못 살겠어요. "
실제로 혈중 알코올 농도 0.03~0.05% 정도인 와인 한두 잔의 음주는 중추신경을 자극해 이성적인 억제가 풀리고,일시적인 자신감과 가벼운 흥분이 섹스에 대한 관념적 사슬을 끊어서 자유롭게 할 수 있고,괜히 큰소리를 치기도 하고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기도 한다.
미국의 맨체스터대학 연구진은 술을 마시면 이성이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비어 고글 이펙트(Beer goggle effect)'를 공식화했다.
술에 떡이 되도록 취해 들어간 집에서 평소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던 아내가 유난히 예뻐보이는 이치다. 이런 착시 효과 때문에 오랫동안 같이 산 아내에게 덤비는 실수(?)를 하기 쉽다.
그러니 맨 정신으로는 절대 되지도 않던 아내와 찐하게 하고 난 뒤 아침에 곁에서 자고 있는 아내를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술은 분위기를 돋워주는 사랑의 연금술사다. 그리스의 시사풍자가 아리스토파네스는 '술은 사랑을 싹틔우는 우유'라고 비유했고,극작가 에우리페데스가 '술이 없는 곳에는 사랑도 없다'고 했듯이,술과 성의 끈끈한 관계는 확실히 맞는 것 같다.
그렇다면 술은 오로지 좋기만 할까? 약이 과하면 독이 된다. 셰익스피어는 맥베드에서 '술은 욕정을 일으키지만 정력을 뺏어간다'고 했다.
욕정은 일어나지만 힘이 없다는 얘기다. 욕망을 일으키게 했다가는 죽여버리고,자극을 시켰다 물러서게 하고,용기를 주었다 실망하게 하고,시작하게 해놓고는 꼬랑지를 내리고 곯아떨어지게 한다.
웃기는 것은 사람이 술독에 빠지면 거시기도 취해 버린다는 것이다. 흰 거품이 넘실대는 시원한 맥주는 간을 아프게 한다.
간은 남성 몸 안에 있는 여성호르몬을 분해하는 작용을 하는데,이것을 분해하지 못하면 체내에 여성호르몬(estrogen)이 증가하게 돼 발기나 성욕을 관장하는 남성호르몬(testosterone)이 줄어든다.
그리고 테스토스테론을 만들어낼 때 필요한 보조 효소가 체내에 들어간 알코올 대사에 쓰여지기 때문에 테스토스테론 생산에 차질을 빚는 것이다. 결국 성욕 감퇴와 발기력 감소로 이어져 성생활과 영원히 작별을 고하는 슬픈 부부도 있다.
아무리 짜증스러운 일들만 자꾸 생긴다고 매일 술로 풀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쩌겠는가? 우울한 뉴스들은 흘려버리고,돈 없을 때는 집으로 곧장 가서 현관문 활짝 열어 놓고 선풍기 돌려가며 호프집에서 무제한 리필해주는 손가락 뻥과자 한 자루 엎어 놓고 맥주 한잔 기울이며 청승을 떨고 있으면,아내는 바깥에서 무슨 일이나 있는 줄 알고 긴장하며 비위를 맞추고 싶어질 것이다.
평소에 술 마신다고 악을 쓰며 욕하던 아내가 부지런히 계란말이라도 한 접시 해다 주면 남편은 슬그머니 손을 잡아끌어 앉히고 한잔 따라주면 분위기는 더없이 좋을 것이다.
둘이 쨍하고 컵 부닥쳐가며 찔끔찔끔 한 모금씩 아껴 마시다 보면 발끝까지 노근노근해지면서 술자리 콩깍지가 씌워지면 더 이상 내 아내나 내 남편이 아니게 멋져 보이거나 예뻐보일 것이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게슴츠레한 표정으로 작업을 걸면 걸리게 마련이고 그 다음은 뻔한 거 아닐까?
< 성경원 한국성교육연구소 www.sexeducatio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