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불볕더위가 전국을 달군 8일 주요 증권사 영업점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코스피지수가 연중 최저치를 깨고 46포인트나 급락하자 개인투자자들은 시퍼렇게 물든 시세판만 말없이 바라봤다.

신용으로 주식을 샀던 일부 고객은 손실폭이 커지자 담보비율을 맞추기 위해 서둘러 매도 주문을 내는 모습도 간간이 목격됐다.

특히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주가가 빠진 탓에 손절매 기회를 놓쳐버린 투자자들은 투자전략을 어떻게 새로 짜야 할지 걱정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반면 펀드 창구는 문의전화만 가끔 걸려올 뿐 조용한 분위기였다.

신규 투자 상담도 거의 끊겨 일부 지점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속 타들어가는 개미들

이날 코스피지수가 1550선 주변에서 횡보하던 오전만 해도 저가 매수 기회를 문의하는 투자자가 간혹 있었지만 오후 들어 낙폭이 커지자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이노정 한국투자증권 영업부 차장은 "연중 최저점이 무너지고 지수가 급락하자 일부 개인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매도 주문을 내는 모습이 보였다"며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최근 저가 매수에 나섰던 일부 고객은 주가가 떨어지면서 담보비율을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주식을 팔고 있다"고 말했다.

동양종금증권 서울 강남역지점 관계자는 "주가 하락세가 멈추지 않자 개인투자자들의 문의가 조금씩 늘고 있다"며 "보유 종목의 평가손실이 계속 커지고 있는 상황인데도 대부분의 고객은 매도 타이밍을 상의만 할 뿐 실제 매도에 나서는 경우는 아직 많지 않다"고 전했다.

일부 영업점은 평소보다 더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우리투자증권 영업부 관계자는 "주식 투자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면서 실망하는 고객이 늘어난 탓인지 전화문의도 거의 없었다"며 "일부 공격적 성향의 투자자들만 저가 매수 기회가 언제쯤 올지 물어오는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대신증권 관계자는 "최근 2개월이 채 안 되는 사이에 지수가 연중 최저치로 폭락해 증시를 쳐다보지 않으려는 개인들이 늘고 있다"며 "아무도 바닥이 언제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분위기여서 속만 태우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현금을 보유한 개인들도 여전히 관망세다.

김선만 대우증권 잠실자산관리센터장은 "일찌감치 주식을 팔고 현금을 들고 있는 고객들도 현재의 하락세가 과도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지만 시장이 좀 더 안정될 때까지 매수 시기를 늦추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날 한국투자증권 영업점을 찾은 한 개인투자자는 "바닥이 가까워졌다는 판단에 손절매를 미루고 더 기다릴 생각이었는데 연중 최저치가 맥없이 무너지는 걸 보니 걱정이 커졌다"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담담한 펀드 창구

이날 펀드 창구는 의외로 차분한 분위기였다.

펀드 가입 문의와 환매 요청 모두 뜸한 편이었다.

다만 뭉칫돈을 넣었던 일부 투자자와 긴급 자금이 필요한 가입자를 중심으로 환매에 나서기도 했다.

김준수 한국투자증권 고양 화정지점장은 "적립식펀드 가입자 중에서는 자동이체를 일시 중단해 놓고 시장 상황을 지켜보자는 고객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며 "환매 문의는 간간이 있지만 실제 환매를 요청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고 전했다.

김 지점장은 "과거에는 환매 고객에게 좀 더 기다려보라는 조언을 했지만 최근 들어 주가 하락이 길어지면서 무리하게 환매를 말리는 직원이 없을 정도로 투자심리가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숙철 동양종금증권 서울 삼성역지점장은 "펀드로 들어오는 돈도 없고 나가는 돈도 없이 '올 스톱'된 상태"라며 "다만 한국뿐 아니라 글로벌 증시가 모두 조정을 받고 있고 급락장을 몇 차례 경험하면서 투자자들이 비교적 차분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손실폭이 커진 일부 펀드 가입자들은 체념한 채 대책 없이 반등 시기만 기다리고 있는 경우도 있다"며 "과거처럼 폭락 때 배짱으로 저가 매수에 나서는 모습도 이제는 사라졌다"고 전했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최근 환매 고객들은 투자 기간이 오래 돼서 손실폭이 작거나 가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손실을 감당하기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손실폭이 일정 수준 이상인 투자자의 경우 환매 단계를 지났기 때문에 환매 상담이나 실제 환매 요청은 별로 없다'고 설명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