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고공 행진을 지속하면서 석유화학업계의 '대(大)위기론'이 점차 현실화하고 있다.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나프타 가격이 유가와 연동,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업계는 '제3차 오일쇼크'에 준하는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4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3일 거래된 두바이유 현물가는 전날보다 3.58달러 오른 배럴당 140.31달러를 기록했다.

이런 추세면 정부가 유류세 감면 등 위기관리계획을 발동키로 한 '배럴당 150달러' 돌파도 시간문제다.

나프타가격 급등세에 업계는 공포에 휩싸였다.

수익성 등에 비춰 업계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t당 1000달러를 훌쩍 넘어선 데 이어 3일에는 t당 1240.75달러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공장 셧다운(가동 중단) 등 국내 업체의 자체 감산과 아시아 각 지역에서 발생한 천재지변,설비 가동 중단에 따른 석유화학제품가격 상승으로 상반기 위기를 넘겼지만,나프타 상승세가 이어지고 중동 중국 등에서 새로 지어진 설비가 가동되면 '대위기론'이 조만간 실체를 드러낼 것이란 게 업계의 분석이다.

◆상반기 '반짝 호황'의 비밀


지난 5월 나프타가격이 t당 1000달러를 돌파하면서 석유화학업계에 '빨간불'이 켜졌었다.

원료인 나프타 가격이 폭등하면 다운스트림(하위제품을 만드는 업체) 업체들은 제품가에 원가 인상분을 반영하지 못해 업계 전체가 동반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t당 900달러'를 감산,'t당 1000달러'를 셧다운에 대해 고민해야 할 한계선으로 보고 있다.

SK에너지와 GS칼텍스는 나프타분해공장(NCC)의 가동률을 낮추고 BTX(벤젠,톨루엔,자일렌) 공장도 감산체제에 들어갔다. 고순도 테레프탈산(PTA)을 생산하는 삼성석유화학과 삼남석유화학 등도 생산라인을 멈추는 등 비상체제에 들어갔다.

하지만,예기치 못한 호재가 터졌다.

중국 쓰촨성 대지진으로 원료 수급난에 직면한 중국 화학업체들이 일부 설비 가동을 중단하면서 석유화학제품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재해 복구에 따른 연료용 석유제품 수요와 베이징올림픽 등을 감안해 중국 정부가 국영 석유기업들에 '생산제한 조치'를 내린 것도 가격 상승에 불을 지폈다.

지난 6월 중국 일본 등 대형 화학공장들의 폭설 화재 등 잇단 사고로 가동이 중단돼 수급불균형 문제가 일시 해소된 것도 호재였다.

덕분에 PE(폴리에틸렌) PVC(폴리염화비닐) 등의 국제가는 상반기 동안 25∼35%까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프타 '가격 폭탄'으로 위기 현실화


'천운'에 기댄 석유화학업계의 '반짝 호황'이 끝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나프타가는 이미 t당 1200달러를 넘어서 1300달러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여천NCC 관계자는 "유화업계의 원가구조 중 나프타가 차지하는 비중이 50~70%에 달한다"며 "나프타가격이 t당 1200달러대를 3개월 이상 지속하면 상.하위 석유제품을 만드는 국내 업체중 버틸 수 있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SK에너지 GS칼텍스 등은 중국 등의 화학제품 수요가 증가했지만,가동률을 그대로 유지하는 등 감산체제를 지속하고 있다.

일시적 공급 부족에 따른 현재의 '반짝 호황'이 오래 가지 않으리란 판단에서다.

특히 하반기엔 중동 중국 등이 대규모로 증설한 설비들이 본격 가동될 것으로 보여,국내 화학업계는 나프타가격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에다 국제 공급 과잉으로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갇힐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